













하루하루 모습을 달리하는 황금들녘을, 토실토실 잘 익은 과일들이 이 가을을 풍성하게 합니다. 곶간을 채운 농부의 마음을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나날들입니다.
며칠 전, 2년마다 하는 공무원 건강진단을 하였습니다. 늘 수박 겉햝기처럼 대충하는 것 같아 신뢰감도 없었지만, 그래도 20%의 본인 부담을 하면 40대는 위암, 간암, 유방암, 자궁경구암등을 할 수 있다고 하여 25,000원을 더 내고 검사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결과가 우편으로 날아왔던 것입니다.
다른 건 다 정상이었는데 유방암진단에서 좌측유방불투명도 의심, 재검대상이라고 하면서 진찰 및 종합소견에 유방초음파 검진을 요함이라고 되어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랬던지 그 날밤은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혼자 끙끙 앓고 있다가 할 수 없이 남편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내일 당장 병원 가 보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괜스레 남편에게 "내가 오래 못 산다면 어떻게 하지?"
대부분의 남자들은 뒷간에 가서 웃는다는 말이 있기에 해 본 소리였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
화를 내며 더 이상 아무소리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잠시 후, 남편이 화장실에 들어간 것을 보고 저녁을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대학원 다니는 이모가 숙제라고 하던데 너희들 만약,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면 기분 어떨 것 같애?"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 엄마가 아파서 갑자기 죽게 된다면 말이야" 소리죽여 살짝 물어 봤는데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 딸의 반응은 으앙하고 울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5학년인 아들의 반응은 "엄마! 난 그런 생각 안 해 봤으니 대답 안 할래요"하고
식탁을 박차고 일어나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죽음을 생각 해 보라는 것인데........"
식탁으로 나온 남편은 정색을 하며,
"쓸데 없는 말 아이들한테 하지 마"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어찌 영원히 살 수 있겠습니까.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아이들이기에 해 본 소리였는데....
또한, 소중한 인연들이기에 서로를 위하며 살아야 하고,
하루하루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정말, 내가 몇 달을 살 지 못한다면?
아직 한번도 생각 해 보지 않았던 '미리 써 두는 유언장'이 생각났습니다.
물러 줄 재산, 정리 할 재산은 없지만, 내 사랑하는 가족이 제일 큰문제였습니다.
남편이야 그렇다 하더래도, 아직 엄마손이 많이 필요한 어린 녀석들을 두고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소름이 오싹 돋아났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어수선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 뒤, 쉬는 토요일을 이용하여 진찰을 받았던 병원을 찾아 재검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벌초때문에 병원 앞까지만 태워주고 떠나버리고, 혼자 순서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초초하던지... 가슴 졸이며 앉아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오른쪽 유방에 0.45cm 정도의 물혹이 있다고 하시며, 암은 아니고, 6개월 후 다시 초음파를 해 보자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종합병원이라 그런지 의사선생님은 수술이 있다며 금방 나가는 바람에 더 자세한 내용은 여쭤 볼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 문을 나서자 말자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아직 결과 안 나왔어?"
"아니, 나왔어요"
"뭐래?"
"암 아니래요"
"것 봐, 괜히 걱정했지? 알았어. 집에서 봐 고생했어"
저녁이 되어 벌초를 갔던 남편이 돌아 와 의사선생님이 적어주는 메모지와 함께
자세히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그런 건 확실히 알아봐야 해, 다른병원 다시 가 보자"
"아니, 12월에 다시 검사 해 보자고 하던데..."
"아무말도 하지 마"
".........."
일주일 후, 토요일 오후에 6개월마다 정기진단을 받아보고 있는 00내과를 찾았습니다.
언제나 초음파를 하며 몸 상태를 확인하는 의사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자궁에 있는 물 혹 외에는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우리 몸 속에는 물혹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물혹이 양성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고도 말을 합니다. 하지만 내겐 너무 쉽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야기 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내 발걸음은 너무 가벼웠습니다.
그간의 마음 고생은 어디로 보냈나 싶을 정도로.....
몸이 아플 때에는 남편이 곁에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 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게 바로 부부아닌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날이었습니다.
미리 써 보는 유언장?
서른넷, 서른셋, 늦까기 노총각 노처녀로 만나 당신 때문에 참 행복했습니다.
남남으로 만나 서로를 맞추어 가는 일 쉽지 않았기에 많이도 다투었었지요.
하지만, 이제 당신이 내게 향하는 그 마음 알고 있기에 다툼의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힘겨울 때 제일 많이 걱정 해 주는 사람,
이렇게 마음 어수선 할 때 위로 해 주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평생 소원은 블러그에 있는 글, 수필집을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느끼고 감동한 비록 보잘 것 없고, 볼품없는 글들로 가득하지만,
이름 석자 적힌 책을 하나 만들어 무덤가에 놓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나의 딸 아들...
어느 부모에게나 다 소중한 아이들일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여 만들어 낸 보물 같은 자식들 어찌 귀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없더라도 보듬어 주고, 쓰다듬어 주면서 사랑을 듬뿍 주면서
하얀 도화지 같은 순수한 가슴속에 파릇파릇 고은 새싹 자라날 수 있도록
꿈과 희망을 가진 큰나무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
우리 딸은 책임감 강하고 공부도 잘 하지만,
늘 어지려 있는 물건들 잘 챙기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습관 고쳐야 될꺼야.
그리고 언제나 밝은 웃음을 잃지 않도록 하기 바래
귀염 받는 것은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듯이....
곱고 예쁜 처녀로 자라주길 바란다.
말썽꾸러기 우리 아들은 누나에게 너무 의지를 해서 그런지 책임감이 부족한 것 같애
미술대회 갈 때에도 준비물은 누나가 챙겨주고 간식도 누나가 챙겨줘야 먹고 하는 것 보면말이야. 이제 스스로 하는 법을 배워갔으면 좋겠어. 그리고 컴퓨터 게임에 너무 열중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단다. 한 번 빠져들면 옆에서 불려도 못 알아차리고 열중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늘 집중력이 강해 뭔가 해 낼 것이라 여기며 살아가지만, 얼른 철이들어 어른스러움 보여줬음 좋겠어.
사랑한다 우리 아들 딸...
이를 계기로 나를 다 잡아 보는 날이 되었고,
큰 일을 치뤄 낸 사람처럼 이제 난 다시 태어났습니다.
내 가족을 사랑하며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겠습니다.
물론, 건강관리도 해 가면서.....
덤으로 주어진 제2의 인생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 보렵니다.
모두 모두 건강하세요.
만약, 여러분도 며칠을 살 지 못한다고 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요?
미리 써 보는 유언장 ....한 번 풀어 놓아 보세요 ^^



'시,문학, 감동의글,책 > 潺水아래 여울가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가을에는 (0) | 2006.11.13 |
---|---|
[스크랩]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0) | 2006.09.30 |
[스크랩] 새벽 이슬같은 (0) | 2006.09.25 |
[스크랩] 얫 이야기 (0) | 2006.09.20 |
[스크랩] 당신은 소중한 사람... (0) | 2006.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