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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 나이가 어때서> 저자 황안나 할머니!

잔잔한 시냇가 2010. 7. 2. 19:40

황안나-신정진 노부부의 사랑이야기

 

요즘 나이 든 아내들은 남편을 두고 여행을 떠날 때, 냉장고에 ‘까불지 마!’라는 쪽지를 붙인다고 한다.‘(까)가스조심, (불)불조심, (지)지하철조심,그리고 (마)마누라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는 말이다. 한평생 아내를 곁에 붙잡아 둔 남편에 대한 ‘복수’라고들 한다.

 

황안나(65·세례명·본명 황경화), 신정진(69·화인상사 대표) 부부는 달랐다. 먼 길을 떠나 보내고, 먼 길을 떠나가서는 서로를 잊지 못한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생긴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곰삭은 사랑을 서로 즐기며 산다. 지난해 남편 신씨는 아내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커피를 즐기고, 문학을 사랑하는 ‘만년 소녀’인줄로만 알았는데 아내는 어느새 자기 안의 먼 길을 떠나고 있었던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내 황씨는 1998년까지 39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했다. 퇴직 후유증으로 며칠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난 뒤 그는 자연으로 돌아갔다. 회귀본능이었을까. 산에 오르고, 길을 걸었다. “길에 나서면 아련한 그리움이랄까, 고향이 떠오른다”고 했다. 지난해엔 급기야 혼자 걸어서 해남 땅끝 마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국토종단을 했다. 어느날 지도를 펴놓고 보다가 문득 집을 나선 때가 지난해 3월. 말처럼 근사한 일만은 아니었다. 매일 30~40㎞씩 걷다 보니 “이미 삭혔다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의 증오와 분노부터 회한까지 갖가지 감정들 때문에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고 했다.

 

남편 신씨에게는 산악반 회원들과 함께 떠난다고 속였다. 며느리도, 아들도 아버지를 속이느라 혼쭐이 났다. 국토종단 20여일이 지난 어느날, 백발이 성성한 남편이 길 떠난 아내를 찾아 불원천리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종단 도중 강원동 구룡령 고갯마루에서 만난 남편 신씨는 뒤늦게 아내가 홀로 걸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가 막혀” 거의 통곡하듯 울었다고 한다. 

 

그리곤 다시 혼자 길 떠나는 아내를 보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황씨가 국토종단을 마친 뒤, 남편 신씨는 아내와 함께 아내가 걸었던 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팔짱을 끼고 밤바다를 걷고, 국토종단 때 일정상 들르지 못했던 다산초당과 영랑 생가도 같이 찾았다. 황씨는 “남편이 굳이 내가 묵었던 곳에서 잠을 자고, 내가 걸었던 길을 고집했다”고 전한다.

 

실은 두 사람이 평생 한 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참기름집 사장부터 일용직 노동자까지 오가던 불안정한 남편의 벌이 때문에 빚은 늘 산더미였다. 황씨는 20년 동안 모눈종이에하나하나 빗금을 쳐가며 남편의 빚을 갚아나갔다. 1983년엔 급기야 이혼 서류에 도장까지 찍었다가 3년 만에다시 만났다. 남편을 끝내 놓지 않은 건, 한 인간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나는 끝까지 남편의 인간성을 믿었어요. 빌려준 돈을 받으러 가서는 채무자가 가난하게 사는 게 불쌍해 코트까지 벗어주고 오기 일쑤였으니까요.”

 

남편 신씨에게 썩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지금도 “장사꾼은 장사꾼 다워야지, 사람이 좋다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뜨끔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남편은 임신한 아내가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물만두 한 접시 사줄 돈도 없었다. “인생을 사는 데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남편은 돈 대신, 틈나는대로 아내의 문화적 경험을 지원했다. 젊은 시절에도 아내가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면 말리지 않았고, 아내가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면 가게 문을 닫고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같이 영화를 보기도 했다. 수도꼭지 수출로 남편의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오른 뒤엔 둘이서 외국여행과 산 기행을 즐겼다.

 

“내가 젊은 시절에 고생을 시켜서 국토종단도 용감히 해내지 않았을까 싶어. 하하. 이 사람 정말 대단해요. 나한테는 죽도록 매력 있어요.”

 

어느덧 ‘만년 소녀’에서 인생의 진리를 알아버린 용감무쌍한 할머니로 변해버린 아내는, 넉넉한 품을 가진 큰 남편의 됨됨이를 이해하게 됐다. 남편은 남편대로 세상 만물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내를 최고로 친다.

 

“이 세상의 남편들에게 할 말이 있어. 자기 아내를 길 위에 좀 세워보라고. 주부들이 늘 일탈을 꿈꾸는데, 남편들이 잘 안 보내요. 사랑해서 결혼하고, 바닥까지 가고, 길 위에 서서 보니까 사랑했던 남편도 떠오르더라고. 아내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에요.” 아내 황씨의 말이다.

 

황안나씨는 최근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책을 냈다. 책에는 지난해 국토 종단을 한 23일간의 기록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여행길에서 자신이 만난 이들에 대한 가슴 따뜻한 얘기뿐만 아니라 길에서 깨우친 인생의 진리도 아름답고 속 깊다. 특히 큰 아들을 결혼시키며 겪은 자신의 갈등, 며느리와 행복한 고부간의 관계를 맺기까지 얼기설기 엮인 인생의 깨달음은 솔직해서 더욱 감동적이다. “고마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기록하느라 애썼다”는 말에서 주변을 꼼꼼하게 배려하는 그의 면모가 엿보인다.

 

황씨는 “새벽길을 걸으면서 무서움이 내 마음 속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다니던 산에서 40대 가장 한 명이 소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고 난 뒤 새벽 등반객이 절반 이상 줄었지만 그는 손에 묵주를 들고 산을 오르며 “남자가 죽은 곳을 지날 때마다 두 손 모아 굽신 절하다 보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여자는 누구의 관심도 눈길도 끌 수 없게 되어버린 나이에야 겨우 모든 그물에서 해방된다고 쓴 시가 인터넷에 있더라구. 그런 어긋남의 연속이 삶인가 싶어.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되고 나서야 더 이상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이 없는 어긋남의 연속…. 남편이 사주겠다는 다이아몬드 반지도 관심이 가질 않아. 나는 가진 게 너무 많더라구. 국토 종단이 끝난 뒤 움켜쥐고 있던 것을 하나하나 놓고 있어.”

-한겨레신문 <이유진 기자>의 글에서,

 

젊음이 부끄러울 뿐이다.

 

 

출처 : 물음표와 느낌표 & ing
글쓴이 : 꿈디자이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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