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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룩한 분노[3.1(민족 해방)운동]

잔잔한 시냇가 2013. 3. 3. 09:21

 

 

 

 

 

 

 

 

 

 

 

 

       [스크랩] 거룩한 분노[3.1(민족 해방)운동]

                   海松 김달수시인님작품

 

 

 

 

 

 


     

     

    거룩한 분노[3.1(민족 해방)운동]


     

    海松 김달수

     

     

    1919년 오늘

    이 땅에는 고귀한 생명이 태어났다

    성은 한마음 이름은 거룩한 분노

     

     

    마탄의 사수 앞에서조차도 민족의 지대한 순수함으로

    흰옷을 걸치고 태어난 이 땅의 새 생명

    문화의 이름으로 문화를 이성의 이름으로 이성을

    빼앗으려 했던 음흉한 연극에 속지 않기 위해

    겨레의 피맺힌 한을 품고 태어난 이 땅의 새 생명

     

     

    우리 민족의 희망을 품고 새 역사를 꿈꾸며

    온 누리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태어난 그날

    하늘 끝에 머물다 찾아온 눈부신 햇살에

    땅속 깊은 곳에서 깨어나 봇물 터지듯

    황폐한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는 거대한 물결 같은

    찬란한 깃발이 춤을 추었고 뜨거운 함성이 울려퍼졌다

    빗발처럼 쏟아지는 피압박 속에서도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위한

    거대한 횃불은 타올랐고 평화 행진은 더욱 꽃을 피웠다

     

     

    그곳에는 나 그리고 너도 없이

    우리만이 숨을 쉬고 있었으며

    그곳에는 두 마음 두 뜻도 없이

    위대한 힘을 지닌 한마음과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는 한뜻만이

    하나 되어 고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새날의 빛을 향한 역사의 맥박으로 태어나

    민족의 희생을 딛고 나라사랑의 회전을 이끌어낸 피의 노정으로서

    우리민족의 영혼 속에 낙원이 된 거룩한 신화가 되었다

     

     

    우리마음에도 불멸의 유산으로 남게 될

    해산의 고를 겪고 커다란 목표를 향한 교훈을 심어준

    이 땅에 고귀한 생명,

    아! 그때 그 정신 그 뜻

    "거룩한 분노여 영원하라

     

     

     

 

 

 

 

 

 

 

 

 

 

 

 

 

[스크랩] [화보]유관순 열사 등 순국선열의 애국혼이 서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문화재동영상/추억나무의바람님작품

 

 

 

 

유관순 열사, '진짜 얼굴' 보니‥17세 청순 여고생

MBC | 권흥순 기자 | 입력 2012.11.13 21:06 | 수정 2012.11.13 21:21

[뉴스데스크]

◀ANC▶

전문가들이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정밀분석한 결과 사진 속의 얼굴은 고문을 당해 부운 얼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차원으로 복원한 유관순 열사의 진짜 모습 보겠습니다.

권흥순 기자입니다.

◀VCR▶

널리 알려진 유관순 열사의 사진입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을 당시 얼굴로 왼쪽이 부은듯한 모습입니다.

◀INT▶
조용진 박사/미술해부학

"이것은 아마도 오른손 잡이에게 손바닥과 주먹으로 구타를 당해서 부었고,부은 자리가 2-3일이 지나서 눈 코까지 전이된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역사,미술학계로 구성된 고증팀이 3차원
레이저로 분석해 보니 왼쪽 입주변이 가장 심하게 부었고, 얼굴 전체에 부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3D 복원기술을 활용해 유 열사의 부은 왼쪽 얼굴의 부기를 차츰 빼면서 일상 얼굴로 접근했습니다.

3차원으로 복원한 유관순 열사는 17살 청순한 여고생의 얼굴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실제 키도 알려진 것 보다는 작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의 수감기록증에 기록돼 있는 5척 0촌을 5척 6촌으로 잘못 해석해 지금까지 169.7센티미터로 알려져 왔지만, 유관순 열사의 실제 키는 151.5센티미터로 당시 또래들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INT▶ 박경목 관장/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0과 6이 동시에 들어가는 기록표를 조사했더니 유열사의 5척6촌은 6자가 아니라 정확하게 0자임이 밝혀졌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진짜 모습은 단아하고 청순하면서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했던 여학생 이라는게 고증팀의 분석입니다.

MBC뉴스 권흥순입니다.

(권흥순 기자)

기사원문보기: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21113210607095

- 유관순열사의 마지막 유언 -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의 보통과 졸업 사진
1996년 이화여고에서 명예 졸업장을 추서하였다

유관순 독립운동가
생몰1902년 12월 16일 ~ 1920년 9월 28일
출생지대한민국 충남 천안시
수상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1919년

1월 22일 광무황제가 갑자기 서거하였다.

2월 8일 일본 동경 유학생 400여명이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독립선언을 하였다.(2.8독립선언)

3월 1일 3.1운동이 발발하였다. 유관순은 학교 담을 넘어 서울 시위운동에 참여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3월 3일 광무황제 국장례가 거행되었다. 이날은 시위가 자제되었다.

3월 5일 서울에서 학생단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유관순은 이화학당 친구들과 함께 이 시위운동에

참여했다가 경무총감부에 붙잡혔다 풀려났다.

3월 10일 각급 학교에 휴교령이 내렸다.

3월 13일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고향 천안으로 왔다. 유예도는 이 때 학교 선배그룹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모금의 사명을 받았다고 하였다.

3월 14~31일 유관순은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운동을 준비하였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각 부락을 다니면서

시위운동 참여를 권유하였다.

3월 14일 오후 4시 목천보통학교 학생 120명(목천 기미독립운동기념 사업회에서는 171명이라 함)이

교정에서 시위운동을 하였다.

3월 31일 유관순, 매봉산에 봉화를 올렸다.

4월 1일(음력 3.1) 아우내 만세시위 발발하다.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 숙부 유중무, 속장 조인원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였다. 오빠 유우석은 공주에서 시위운동에 참여하다 부상당해 붙잡혔다.

5월 9일 유관순은 공주법원에서 5년형을 받았다.

6월 유관순과 아우내 만세 주역들이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다. 이에 따라 유관순과 이들은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

6월 30일 유관순은 경성 복심법원 재판에서 3년형을 언도받았다. 유관순은 상고를 포기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고등법원에 상고하였다.

8월 29일 유우석은 공주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9월 11일 유관순을 제외한 병천과 수신.성남지역 시위 주도자들의 상고가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었다.

11월 6~11일 정동 제일교회에서 열린 기독교 미감리회 조선연회에서 천안지역 3.1운동 피해보고와 함께

수감 교역자에게는 20원, 기타 수감자에게는 5원의 구제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1920년

3월 1일 오후 2시, 유관순이 서대문감옥에서 옥중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4월 28일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결혼기념 특사령으로 형기가 절반인 1년 6개월로 단축되었다.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모진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서울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했다.

10월 12일 이화학당에서 유관순의 시신을 인수하여 수의를 해 입혔다.

10월 14일 정동교회에서 김종우 목사 주례로 유관순의 장례식이 거행되어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정부에서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투사 유관순은 독립운동 주동자로 잡혀 모진 고문을 받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서거하였다.
이화학당 교장 프라이저氏가 유관순의 시신을 요구했으나 거절 당하고
결국 국제여론에 호소하여 시신을 인도받았는데 당시 일본은 유관순의 시신을
석유상자속에 토막을 내어 보관하고 있었다

 

.

<유관순 열사의 시신이 보관됐던 석유상자>





사적 제324호 서대문서대문형무소역사박물관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일제와 싸운

6천여 애국지사들이

온갖 고문에 시달려야 했던 호국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목슴을 잃은 400여 순국선열의

애국혼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있다.


추모비 앞에서 경건하게 옷깃 여미고 드높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오로지 조국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다 순국하신 선열들의 강열한 눈빛이 느껴졌다.

우리가 순국선열들의 애국정신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

일제하. 해방. 6.25. 4.19. 5.16. 10.26. 12.12. 광주시민항쟁. 민주화의 물결 등
역사의 굴곡을 함께 하며 살아 온 운영자이기에 추모비 앞에 서 있는 것이 무척 부끄러웠다.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 이제 '세계 10대 강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 !

일본은 재국주의로 회귀하면서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 주장하며 여전히 한반도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켜 수백만명의 인명 피해와 전 국토를 폐허화시키고도

핵폭탄으로 대한민국을 불바다로 반들겠다며 협박을 거듭하고 있다.

순국선열께서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간절히 기원했다.

순국선열들의 명복과 함께 대한민국의 국운 융성을 !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1907년 인왕산 기슭에 일본인이 설계하여
건립한 근대적인 감옥이다.

약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560여 평의 목조건물을 짓고 ‘경성감옥’이라 불렀다.
종로의 감옥에서 500여 명을 데려와 수용하고 광복을 맞이하는 1945년까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과 박해를 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은 곳이다. 애국인사들이 늘어나자 1912년
일제는 마포구 공덕동에 감옥을 또 지어 경성감옥이라 하고, 원래의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이라 불렀다. 1923년 서대문감옥은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고 1944년에는
2,890명이 수용되었다. 18세 미만의 소녀들과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자, 그리고 무기수까지
수용하였으며, 김구선생·강우규·유관순 열사 등이 이곳에 수감되었었다. 유관순 열사는
이 곳에서 목숨을 다하였다.

1946년 광복 직후에는 경성형무소·서울형무소로 바뀌고,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수용되었다.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로, 1967년에는 서울구치소로 바뀌었고,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변동으로 인해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다. 1988년에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일제시대엔 민족독립의 역사를 지니며 그후로는 민주화와 정치적 변화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서 후손들에게 민족의 자존과 자주정신을 일깨워주는 산 교육장으로 매우 뜻깊은 곳이다.

* 옛 서대문 형무소 최초 건축도면 발견

 

 


통곡의 미루나무-높이 30m

이 미루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식재됐다.

사형장으로 끌려 가는 애국지사들이 마지막으로 이 나무를

붙잡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 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눈물로 토해내며 통곡했다 하여 '통곡의 미루나무'라

이름 지어졌다.

사형장

시신출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시간별 프로그램
3?1독립만세운동 재현 11:30 / 13:30 / 15:30
나도 민족대표! 독립선언서 낭독 11:30 / 13:30 / 15:30
“대한독립 만세” 큰 소리 외치기 이벤트 11:00 / 13:00 / 15:00
독립운동사 OX문제풀이 12:30 / 14:30 / 16:30

전일 프로그램
무궁화 꽃 접기, 태극기 그리기, 태극기 페이스 페인팅, 유관순 복장 등 코스튬 플레이
추모글 이벤트, 태극기 탁본 체험, 독립운동가 추모 헌화 및 분향, 태극기 에코 가방 만들기, 독립운동가 가면 만들기, 태극기 연 만들기, 역사관 캐릭터 메모 꽂이 만들기
독립운동 관련 서적 전시 및 할인 판매, 뮤지엄샵 상품 할인 판매

문의 02)360-8590~1 /홈페이지 : www.sscmc.or.kr


 

찾아오시는 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의주로 247 현저동 101번지

지하철 이용시
지하철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독립공원 방향, 1분 소요)

버스 이용시
현저동 또는 독립문정류장에서 하차
간선버스(파랑) : 471, 701, 702, 703, 704, 720, 752
지선버스(초록) : 7019, 7021, 7023, 7025, 7712, 7737
광역버스(빨강) : 9701, 9703, 9705, 9709, 9710, 9711, 9712
공항버스 : 6005(인천공항)

주차 안내 (독립공원 주차료)
대형버스 (25인승 이상) / 10분당 900원
승용차 및 승합차 / 30분 1000원, 10분 초과시 300원
독립공원 주차장 전화 312-2958

가져온 곳 :
블로그 >문화재방송 공식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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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추억나무의 바람| 원글보기

출처 : 행복의방
글쓴이 : 키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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