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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루이 암스트롱

잔잔한 시냇가 2008. 7. 6. 16:14

 

 

 

 

 


정겨운 트럼펫 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다정한 옛 친구 같은 추억을 열어주는 가을이 고맙기도 하다.

파리를 정복한 루이 암스트롱.

너무 오래 만에 들어본다.



두비두비 두왔다 두두...

의미 없는 음절의 스캣 싱잉..

실은 그 노래의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렇게 했단다.

재즈의 대명사로 불리는 트럼펫 연주자 루이 암스트롱.

파리 인들의 기립 박수의 환호도 대단했지만 니스에서는 더한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그의 출신 성분은 비참했다.

그가 소년원에서 트럼펫을 배웠다고 한다.

타고난 음악성은 소년원에 있는 그에게 새로운 인생길이 열리게 된 셈이다.



암스트롱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뛰어난 테크닉과 블루스 같은 필링 때문인 것 같다.

익살스러운 말투. 청중을 웃기던 매너와 그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젊은 날 영어 배우러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그 미국 선생님이 루이 암스트롱을 무척이나 좋아했었지..

한마디 영어를 더 하기 위하여 암스트롱에 관한 서툰 질문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났던 시절이 있었다.

재즈를 알게 되었고 루이 암스트롱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미성도 아닌 컬컬한 목소리.

그는 시드니 베켓과 더불어  본격적인 솔로 즉흥연주를 시도함으로써  재즈 형식의 고정관념을 바꾼 사람이다.

그의 유연한 솔로는 모든 트럼펫 주자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막강한 그의 특별한 보컬 창법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특히 스캣 창법을 대중화 시켰으며 그의 멜로디는 빙 크로스비, 빌리 홀리데이, 프랭크 시내트라 등 30년대 이후로 등장한 모든 가수들에게 실질적으로 영감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루이 암스트롱의 유쾌한 유머와 발랄한 스테이지 매너는 재즈를 보다 많은 이들에게 대중화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실지로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공연을 보거나 또는 연주를 듣고 트럼펫을 잡고 재즈계로 뛰어들었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벌인 세계 순회공연은 그를 미국의 친선대사로 알려질 정도였다.

암스트롱은 가수와 코미디언들에 의해 묘사 되었던 자신의 인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고 한다.

“그건 상관할 바가 아니죠. ”

“사람들은 모나리자를 모방해서 진품보다 더 아름다운 모나리자를 그리지만 여전히 진품을 구경하려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 들고 있거든요.”.


한때 그의 오케스트라와 루이 음악의 인기가 하락한 적이 있었지만 다시 부활하고

백인을 위해 노래하는 엉클 톰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는 흑인의 인권을 위해 앞장섰고 남부지방의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앞장서기도 하였다.


그는 재즈 음악의 한 획을 그은 역사속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스캣 싱깅.

우리나라에도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전 세계를 통해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암스트롱.

재즈의 아버지라고 불리 우는 예술가 이면서도, 스스로 평생을 연예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루이 암스트롱은 1971년 7월 6일 자기가 노래 불렀던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 영민했다.



 

출처 : 언덕에 올라
글쓴이 : 아카시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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