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생활하며 수행하는 법정 스님이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글을 조선일보에 특별 기고했습니다.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과 각별한 인연을 나눈 법정 스님은 "신문•방송•전화가 없는 곳에 살고 있어 소식을 늦게 접했다"며 "직접 빈소를 찾아 조문하지 못하는 마음을 글에 담았다"고 말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 보내며 / 법정 스님
우리 안의 벽
우리 밖의 벽
그 벽을 그토록
허물고 싶어하던 당신
다시 태어난다면
추기경이 아닌
평신도가 되고 싶다던 당신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 땅엔 아직도
싸움과 폭력,
미움이 가득 차 있건만
봄이 오는 이 대지에
속삭이는 당신의 귓속말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 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1914년 여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전 유럽은 긴장 상태에 들어가 암흑의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 북부에서 100m도 안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독일, 프랑스, 스코틀랜드 세 나라 간에는 한 치의 후퇴도 없는 숨 막히는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마른전투(Battle of Marne)라 불리던 그 싸움도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잠시 멈췄습니다.
참호 속에 웅크리고 언제 있을지 모를 독일의 공격에 대비하던 영국군들의 귀에 독일어로 부르는 낯익은 노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영국군의 사기를 더 떨어뜨리기 위해 독일이 심리전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닌가 의심되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그 노래는 합창으로 변해갔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영국군들도 영어로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포격이 반복되던 전선이 순식간에 크리스마스 캐럴로 가득 찼습니다. 밤새 캐럴이 울려 퍼진 전선에 동이 터 올랐습니다.
한 독일군 병사가 참호 밖으로 나와 영국군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병사들은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려 총에 손이 갔습니다. 그러나 독일 병사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작은 나무에 초를 단 크리스마스트리인 것을 확인하고는 총에서 손을 떼었습니다.
순간 영국군 측에서도 몇 몇 병사들이 참호 밖을 빠져나가 그 병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양측 지휘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양측 참호 중간지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사람이 없는 땅(No Man's Land)이라 불리던 그 죽음의 땅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참호 밖으로 나온 병사들은 그때서야 그들 사이에 무수히 널려있는 양쪽 병사들의 시체들을 보게 되었고 양측 지휘관들은 시체수습을 위해 잠시 동안의 휴전에 합의했습니다. 영국 병사들을 묻을 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시체가 모두 치워지자 들판에서 양측 병사들의 축구경기가 벌여졌습니다. 전투 장은 탄피가 가득 찬 진흙벌판에서 공을 차며 외치는 함성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경기 후에는 병사들끼리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 지급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여서 가족사진을 서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양쪽 군 수뇌부는 경악하여 적군 병사와 어떤 형태의 접촉도 금한다는 강력한 명령이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일선의 지휘관들에게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그 명령은 참호를 벗어나 적군 병사에게 접근하는 경우에는 현장에서 총살해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포탄은 다시 상대편 머리위로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최전선의 병사들에 의하여 멈춰졌던 전쟁은 다시 시작 되었습니다.
병사들에 의한 ‘자발적인 크리스마스 휴전’은 무의미한 전쟁을 치르던 그들에게 잠시나마 인간적인 공감대가 형성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로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인류애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다시 기억되고 실천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을 말하는 이가 있고, 하느님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하느님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그 존재로써 지금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있음을 영혼으로 감지하게 하는 이가 있다. 라고 법정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을 주셔서 백성들이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여 오늘의 교회를 세상이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번 김수환 추기경을 보내면서 종파를 초월하고 있고 없음을 떠나 40만이 넘는 조문행열이 5Km에 이르러 5시간을 떨면서도 줄은 이어졌습니다.
런던의 한 신문사가 논문을 공모했습니다. 주제는 "오늘날 교회는 무엇을 잘 못하고 있는가?" 였습니다. 당선작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잘못이 있지만 그 가운데 큰 잘못은 교회의 아름다움, 신비함, 영화로움, 위대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선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의 피로 구속 받아 성령으로 예수에게 연합한 사람들의 공동체 입니다. 영적 공동체이지요. 이제 포도원에 포도가 주렁주렁 달리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 될 터인데 교회는 예수라는 포도나무에 성도라는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아름다운 포도원입니다.
혹시 벌통을 열어본 일이 있습니까? 벌통을 열면 벌들이 수만 마리 있습니다. 그 수만 마리의 벌들이 한 여왕벌을 중심으로 삽니다. 교회는 예수님이라는 여왕벌을 중심으로 한 벌통과 같습니다. 교회의 이 신비한 면들을 부지런히 알려야 합니다.
크리마스 날 전장 터에서 독일 병사와 영국 병사들의 감동적인 모습처럼 하나님이 사랑한 이 나라, 이 아름다운 터전에 개인 간, 종파 간, 정당을 초월하고 미움과 싸움이 끊이지 않고 폭력과 살인이 없는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의 교회지도자와 목회자가 주님 앞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재물을 탐하지 않아야 합니다. 권위와 명예로 교회를 지배하려 들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목사가 '하나님, 나도 이런 목회를 하게 하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노니가전서 2장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말씀을 전할 뿐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원합니다. <4절>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목회를 하게 되었다고 했고 우리가 여러분을 얼마나 온유한 마음으로 대했는지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여러분을 대했습니다. <7절> 모성적 목회를 했다고 했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를 대하듯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11절> 부성적 목회를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흠 없이 거룩하고 바르게 살고자 했는지 알 것이며,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도 증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10절>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는 목회를 했다고 했고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기쁜 마음으로 전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우리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 줄 수 있습니다. <8절> 목숨까지도 주기를 기뻐하는 목회를 했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넘치는 교회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좋은 소문을 내는 교회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소망, 기쁨, 자랑의 면류관, 주님 앞에 내 보일 수 있는 것, 영광 기쁨이 되기를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지금 김수환 추기경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우리들 마음속에서는 오래도록 살아 계실 것입니다. 그분은 지금 이 순간도 봄이 오는 이 대지의 숨결을 빌어 우리에게 귓속말로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 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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