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관계에서 사랑과 공격성
윤순임
Erich Fromm은 사랑을 인간이 존재하는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 보았다.
그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특별한 단원으로 묶어서 고찰하였고, 그 외에 이웃 사랑, 어머니 사랑, 성애(erotic love), 자기 사랑, 하느님 사랑 등을 들고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커플간의 성애를 다루고자 한다.
현재 임상 실제에서 입원 환자를 제외한 많은 내담자들은 거의 모두가 인간관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 성인들은 성애 문제로 외롭거나 괴롭거나 슬프거나 불행하고, 폭력까지도 감수한다.
성애에는 남녀간의 사랑 뿐 아니라 동성애도 있으나 이 글에서는 남녀 사랑으로 축약하기로 한다.
남녀 관계는 서로 분리되고 독립된 두 사람이 하나이기를 원하는 특성을 가졌다.
이 친밀감의 특성으로 인하여 공격성이 문제가 된다.
아래에서는 우선 정신분석에서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남녀관계와 연결된 사랑과 공격성의 개념을 정리하고, 성인 남녀 관계의 사랑에 빠지는 현상에 대해서, 그리고 대상 복구의 무의식적 소망과 대상관계 반복의 무의식적 유혹에 대해서, 남녀의 차이와 비연속성에 대해서, 끝으로 초자아의 성숙과 집단 역동에 대해서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사랑
Bergmann(1980)은 프로이드의 사랑에 대한 세가지 개념을 구별하였다.
첫째, 프로이드가 1905년에서 1912년까지 쓴 글을 보면, 사랑이 원초적인 관계, 즉 모아 관계의 재발견(Die Wiederfindung der primären Bindung)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각각의 개인이 무의식적이고 유아적인 근친상간 금기 환상을 어떻게 극복하고 그 힘을 활용하는가이다.
두 번째, 프로이드는 1914년 <나르시시즘 입문Zur Einführung der Narzismuß>에서 인간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이상적인 자아로 전이되고 그것이 다시 사랑하는 대상으로 투사된다고 하였다.
자신 스스로 기대하지만 될 수 없는 것을 상대방에게 기대한다는 것이다.
자아 이상의 공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셋째로, 1915년 <추동과 추동의 운명Triebe und Triebschicksale>에서 자신의 추동 충동이 성적 대상(genital object)을 향한 사랑으로 발전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프로이드의 전통에 따라 정신분석에서는 사랑을 리비도(libido)와 같은 의미로 쓰기도 하였다.
정신분석은 남녀관계에서 대상(object)의 존재에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인간 발달에서 대상의 의미를 더 깊이 연구하면서 다시 사랑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즉, 사랑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체험으로 이해된 것이다.
Winnicott같은 대상관계 이론가는 삶의 시초에 신생아와 어머니가 있기 보다는 어머니와 신생아의 단일체(union)가 있다고 하였다.
Blanck와 Blanck(1979)는 사랑과 리비도를 동일어로 이해하며, 리비도는 대상과 합일하고자 하는 추동으로, 공격성은 대상으로부터 분리하고자 하는 추동으로 설명하였다.
Kernberg(1977)도 사랑을 하나의 추동으로 받아들이지만 추동뿐 아니라 자아의 능력을 특징짓는 여러 요소들을 사랑이라는 체험에 포함시킨다.
사랑은 추동의 힘과 대상에 대한 부드러움(tenderness), 대상에 대한 헌신을 체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는 것이다. Boesky(1980)는 여러 언어를 분석하여 사랑과 이별과 신뢰가 서로 연결돼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우리 유행가에도 거의 모든 사랑 노래에는 이별의 주제와 신뢰의 문제가 들어 있다.
남녀간 사랑의 역사는 전외디푸스기, 외디푸스기, 그리고 후외디푸스기로 나누어서 고찰할 수 있다.
전외디푸스기에는 구강기적, 항문기적 추동 발달은 물론 분리와 개별화 과정의 문제가 제기된다.
외디푸스기에는 부모의 사랑관계에 관여하는 아이의 심리적 상황이 빚어내는 여러 가지 체험과 세대간의 간격 문제, 자신의 성(sexuality) 정체성과 다른 성에 대한 유아적 이해 등이 주제가 된다.
후외디푸스기에는 외디푸스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초자아가 성숙하고 가치와 규범에 대한 추상화, 개별화, 탈개인화가 일어난다.
그 외에도 Kohut(1984)의 자기 심리학에서는 자기-대상(selfobject)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원초적 대상의 사랑이 자기(self)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로 보았다.
Kohut은 사랑을 추동의 표현, 즉 추동의 파생물이거나 추동의 승화가 아니라 자기의 체험으로 보았다.
자기 심리학에서는 자기 체계의 응집력(cohesiveness)이 크면 클수록 더 진실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고 본다.
상호주관주의(intersubjectivity) 이론에서는 사랑의 관계를 자기와 대상간의 관계라기보다는 자기와 자기의 관계로 본다.
이 이론에서는 사랑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토대 위에 상대방에게 의존하고자 하면서도 자신이 유일하고자(unique) 하는 욕구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상호주관성의 평형이 깨질 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생기게 되는데 이것은 사랑 관계가 아니다(Benjamin, 1988; Fromm, 1977 참조).
두 사람의 합일에 대한 동경과 두 사람 각각의 유일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간의 갈등은 사랑에 있어서 영원한 과제이다(Mertens, 2000 참조).
2. 공격성
프로이드는 여러 글에서 공격성에 대한 언급을 하지만 특히 1920년 <쾌원리를 넘어서Jenseits des Lustprinzips>, 1930년 <문명 속의 불만Das Unbehagen in der Kultur>, 1940년 <정신분석개관Abriß der Psychoanalyse> 등에서 공격성이 죽음의 추동의 표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밝혔다.
그는 이 파괴적인 힘을 미움, 증오, 마조히즘, 인간과 문명에 대한 원초적인 적개심과 같은 현상에 연결시켰다.
그는 삶의 추동과 죽음의 추동이 모든 삶에서 유기체의 세포 하나에까지 영향을 입힌다고 하였다.
프로이드는 삶의 추동이 발달과 종족 보존을 향해 있고, 죽음의 추동은 무기질의 안정성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특성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입문 새강의Neue Folge der Vorlesungen zur Einführung in die Psychoanalyse>(1933)에서 모아관계에 대하여 강의하면서 유아의 끝없는 욕구 혹은 열망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부모가 아무리 완벽하게 아이를 돌보아준다 하여도 좌절감을 체험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로써 프로이드는 좌절감에 의한 공격성, 즉 반응적 공격성에 대해서도 언급한 셈이다.
죽음의 추동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Anna Freud(972)까지도 죽음의 추동 이론을 둘러싸고 정신분석 이론가들이 두 파로 나뉘어졌다고 하였다.
Green(1987)을 위시한 불란서 정신분석가들과 Klein(1972)은 이 죽음의 추동을 인정하면서 대상관계 이론을 통하여 이 이론을 어느 정도 보완하였다.
그러나 Fairbairn(1952)과 Guntrip(1968)같은 대상관계 이론가들과 자아심리학자들은 죽음의 추동 이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죽음의 추동 개념 없이도 유아 관찰을 통해서, 혹은 심한 정신병리를 통해서 인간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편화나 자기 소멸에 대한 극도의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불안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Hartmann(1972)은 에너지를 리비도 에너지, 공격적 파괴적 에너지, 그리고 원초적인 중성의 자아 에너지로 구별하였다. 자아 기능이 성숙하고 분화되면 욕구를 즉각적으로 만족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러한 유보 능력은 다시 자아 능력을 강화하고 분화시킨다. Hartmann은 이러한 자아의 갈등없는 공간(conflict free sphere)을 상정함으로써 인간이 추동의 통제로부터 점차 자유로와질 수 있다고 하였다.
Winnicott(1950), Greenacre(1960), Spitz(1965)같은 분석가들은 공격 추동을 상정하는데, 공격 추동에는 처음부터 건설적인 측면과 파괴적인 측면이 병존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파괴적인 추동은 주로 좌절에 대한 반응이다. Kohut(1973, 1979)은 자기 심리학에서 나르시시즘에서의 공격성을 설명하고 있다.
유아가 어머니를 한 독립된 존재로 지각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공격성은 비파괴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경계를 짓는(abgrenzen) 기능을 하며, 이로써 자기정체감이 성취된다.
인간에게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생애 초기에 필요한 만큼의 보살핌과 감탄과, 어려울 때 달래주고 위로해주고 안정시켜주는 이 모든 역할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필요가 끊임없이 그리고 외상이 되는 방법으로 좌절될 때, 만성적인 자기애적 노여움(rage)이 생기는데 이것은 공격성의 파괴적인 형태이다.
Kohut에 의하면 이러한 공격성의 파괴적 형태는 자기응집성이 약해서 생긴 산물이다.
버텨주고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이 미흡하면 유아는 자기 체계의 붕괴 위험을 체험하는 것이다. Kernberg(1995)는 그의 저서 <사랑관계Love relations>에서 전외디푸스기의 공격성과 나르시시즘으로 인해 사랑의 능력이 약화되고 때로는 손상되는 것에 대하여 강조한다.
무의식에 깊이 억압된 자기애적 좌절은 사랑 대상과 세상에 대하여 시기심과 복수심을 불러 일으킨다고 한다.
Fromm(1977)도 인간의 파괴성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했는데, 그는 파괴성의 원인을 개인사와 사회 구조에서 찾았다.
착취적이고, 개인의 자유와 통합성, 비판적 사고, 생산성을 억제하는 사회는 파괴성을 낳는다.
그리고 유아기에 체험하는 공허감과 무기력감, 아무 것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먹먹한 분위기, 그리고 기쁨이 없는 상태는 한 인간을 평생 얼어 지내게 할 수도 있다.
최근의 신생아 연구(예를 들면 Stechler, 1987, 1990; Lichtenberg, 1999) 결과에서 신생아들이 보이는 호기심, 탐구 능력은 공격 추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생물심리학적인 활동이고 자기 주장을 하고자 하는 동기 체계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유아는 구강기, 항문기를 거치면서 많은 기쁨과 좌절을 겪게 되는데, 적당한 좌절은 자율성과 개별화(individuation)와 분리(separation) 과정을 촉진시키지만, 과도한 좌절이나 과잉보호(overprotection)는 이러한 발달 과정을 해치고 병리적인 영향을 끼쳐 파괴적인 공격성을 증가시킨다.
한가지 덧붙일 것은 부모의 파괴적인 행동은 아이들이 모방을 통하여 학습할 수 있고, 그러한 행동을 멀리하고 싫어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동일시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3. 사랑에 빠지기(Falling in love)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능력은 생각처럼 자명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능력의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은 자아 이상을 사랑하는 대상에게 투사하여 사랑하는 대상을 이상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성숙한 자아 이상은 전외디푸스적인 대상 갈구와 외디푸스 갈등을 극복하여 실현된 것이므로 성숙한 자아 기능과 초자아 기능에서 무리없이 발휘될 수 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마음 깊숙이 갈구하던 대상을 현실에서 만남으로써 자신의 심리적 경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는 삶에 새로운 의미를 주는 절정 경험이다.
자아 이상의 상호 투사가 일어날 때 자기 가치감정이 증가되고 사랑이 서로에게서 응답되므로 자기 사랑과 대상 사랑의 융합이 일어난다. 이러한 체험은 성적 열정을 가능하게 한다.
주관적으로 자신의 이상에 맞는 대상을 선택하였을 때 그 관계에 초월적인 요소가 발생하는데, 이 때 사랑하는 파트너는 상대에게 헌신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
예를 들면, 사람들에게 “왜 결혼했느냐”고 물으면, “이 사람에게라면 희생해도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대답한다.
짝사랑의 경우 사랑을 체험하는 사람의 심리적 탄력이 크면 클수록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거쳐 어떤 외상없이 회복되며 오히려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외디푸스기적 좌절이 크거나 외디푸스기적 패배 의식이 강한 사람은 짝사랑과 관련된 열등감이 크고 그로부터 회복이 어려우며 이 경험이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가 되기 쉽다.
성숙한 초자아의 기능은 사랑과 관여를 촉진하고 상대방에 대한 진실한 관심과 책임감, 커플의 관계를 보호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초자아는 언제나 외디푸스 갈등의 잔여물을 포함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성애적 역량을 위협할 수도 있다.
심한 경계선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심한 자기애성 병리, 반사회적인 경향, 자아동조적 공격성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감각적인 즐거움이나 피부성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대단히 결여되어 사랑에 빠지는 능력이 심각하게 제한된다.
그 다음으로는 성적인 흥분과 성애 욕구 능력은 보일 수 있지만 내재화된 대상관계의 병리 때문에 커플 관계에서 분열(splitting) 기제를 많이 쓰는 사람들이데, 이 경우 전체 대상과 관계하기 보다는 부분 대상(partial object)을 이상화 예를 들어 좋은 부분만 사랑하고 나쁜 부분은 밖으로 투사하여, 이상화하다가 뒤집히면 아주 나쁜 대상이 될 수 있다.
하는 경향 때문에 관계가 대단히 깨지기 쉽고 오염되기 쉽다.
그러므로 성기기적 우선성(genital primacy)이 정서적인 성숙을 반드시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자기애적 성격 구조를 가진 많은 내담자들은 애정을 느끼는 한 대상에게 깊이 관여할 수 있는 능력 없이 여러 사람과 동시에 성관계를 하는 유아기적 성향을 보인다.
이 내담자들은 사랑에 빠지거나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은 성관계 대상이 즉각적으로 만족을 주지 않으면 심한 좌절감과 조바심을 보인다.
이러한 행동을 사랑에 빠진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은 자기애적인 문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이 대상을 정복하면 곧 무관심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남성들에게 만연되어 있는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는 피부성애에 대한 끝없이 반복되는 갈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초기 공생적 경험에 고착되어 쉽게 퇴행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Arlow 등(1968)은 이러한 현상을 원초적 대상(primary object, 어머니)과의 관계에서 대상항상성이 미흡하게 수립되어 이를 보상하기 위한 신체표면 이상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Riviere(1937)는 다른 성에 대한 시기(envy)의 뿌리가 구강기에 있다고 하였으며, 주된 역동으로 조적 방어(manic defense), 특히 거절과 경멸이 사용됨을 관찰하였다.
예를 들어서 한 남자 내담자가 여성에게 강렬한 시기심을 느낄 때 그는 이 여성을 성적으로 정복한 후에 그녀를 평가절하하고 동성의 파트너에게로 도피할 수 있다.
이 행동은 그의 자기애적 문제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Fairbairn(1954)는 성도착(perversion)이 핵심 자아가 감내할 수 없는 깊이 분열된 이상화된 대상과 박해하는 대상으로 분열됨.
대상 관계를 대체하는 기능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기애적 문제를 가진 사람은 사랑에 빠짐으로써 얻는 행복감, 충족감, 감사하는 마음을 체험하기가 어렵다.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사랑의 대상을 부분적으로 지각하기 보다는 전인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소위 Klein의 우울 포지션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낭만적인 이상화를 할 수 있고, 사랑에 빠질 수 있으며, 사랑을 유지할 수도 있다.
그들은 이러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발기부전, 조루, 사정지체, 불감증과 같은 증상에 시달릴 수 있다.
이들이 외디푸스기적인 사랑의 대상을 무의식적으로 동경하고 이 금지된 사랑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외디푸스 갈등을 충분히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흔히 관찰할 수 있는 성적인 사랑 대상과 이상적인 사랑 대상을 분리하는 현상은 이러한 무의식적 갈등이 표현된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을 속죄하려고 한다면 그는 오직 좌절을 주는 사람하고만 사랑 관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동은 피학적 사랑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4. 대상 복구의 무의식적 소망과 대상관계 반복의 무의식적 유혹
남녀가 커플이 되는 것은 의식적 기대와 무의식적인 소망, 그리고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상호작용하여 직관적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성숙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자아정체감이 성숙되고 대상관계를 깊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커플 관계에서 의식적으로 기대하는 것과 무의식적인 선택의 원인 사이에는 일치가 더 강할 수도 있고 불일치가 더 강할 수도 있다.
커플이 되어 자신의 부모와 애정어린 동일시를 실현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동경이 큰 만큼 동시에 공격적인 경향 또한 증폭된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퇴행이 일어나고 그 퇴행은 여러 가지 좌절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Kernberg(1995)는 사랑과 공격성의 평형은 역동적어서 그 통합의 정도가 언제나 불안정하다고 하였다.
이것은 커플이 가장 좋은 상황에서조차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사람 혹은 두 파트너의 미해결된 갈등이 사랑과 공격성간의 평형을 위협할 때 커플 관계는 불안정해진다.
Kernberg는 정서적으로 성숙된 커플도 갈등없이 안정되게 사는 것은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하였다.
커플 관계의 파트너는 과거의 개인사에서 손상되었거나 상처받은 대상관계를 복구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소망이 이 관계에서 충족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동시에 충족되지 않은 공격 욕구라든지 자기애적인 보복 욕구 혹은 다양한 대상관계의 갈등 등 과거의 병리적인 대상관계를 반복하려는 유혹 또한 강하다.
일상생활에서나 임상 실제에서 커플들은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서 자신의 갈등이나 억압된 충동 등을 무의식적으로 투사하여 그 파트너가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유발하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을 통제한다.
그러므로 커플 치료에서는 각 개인의 특성뿐 아니라 그 관계의 특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Kernberg(1988)는 커플이 정상적으로 질투할 수 있고 경쟁할 수 있는 삼각 구도 속에서 살 때 오히려 사랑과 공격성의 평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자기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질투 능력이 부족하고 시기심이 강하다.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모두 심한 자기애적 병리를 가질 때 정상적인 질투 능력이 배제되는데 이러한 관계에서 혼외 정사를 통해 실제적인 삼각구도 삼각구도를 커플 내에서 심리적으로 지탱하지 못하고 밖으로 행동화(acting-out) 함으로써 오히려 커플 관계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가 상연되며, 축첩, 그룹 섹스 등 성적으로 문란한 행동으로 인해 커플을 보호할 수 있는 삼각구도가 깨질 수 있다.
정삼각구도(triangulation)의 무의식적 시나리오는 배제된 제삼자에 대한 환상으로서, 각각의 파트너가 동성의 이상화된 인물을 잠재적으로 두려워하는 구도이다.
역삼각구도(inverse triangulation)의 무의식적 시나리오에는 파트너가 아닌 외디푸스기에 소망했던 이상화된 이성과 관계를 맺는 보상적이고 보복적인 환상이 파트너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
Kernberg는 잠재적인 환상 속에서 커플의 침대에는 언제나 여섯 사람이 함께 있다고 제안하였다.
이 제삼자는 질투의 근원이 되며 성적 친밀 관계에서 정서적 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지만, 이는 동시에 커플의 통합성을 보호하는 일종의 경고 신호가 되기도 한다.
모든 인간관계는 끝나기 마련이라든가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는다든가 하는 환상이 실제로 현실이 될 수 있고, 각각의 파트너는 시시각각으로 다른 관계를 갈망할 수 있고 그것을 포기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Kernberg는 이러한 내적 현실을 억압하지 않고 자각하는 것이 커플의 삶에 깊이를 더해주고 커플 관계 내에 새로운 갈망과 환상, 성적 긴장을 재배치하여 커플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커플 관계에서는 유아기에 발단을 둔 초기 공격성같은 것이 활성화되는데 이런 공격성을 성관계에서나 공동의 가치 구조(joint structure of values)를 구축하여 실현하는 과정에 활용한다면 그 관계가 매우 풍부하고 깊어질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공격성은 관계를 해체시킬 위험이 있으므로, 커플의 사랑 관계는 사랑과 공격성의 평형과 변화, 즉 양가감정을 참아내고 조절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5. 남녀의 차이와 비연속성
남녀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해부학적, 생리학적 의미에서뿐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외디푸스기를 진입하는 데에도 각각 다른 어려움이 있다.
어머니가 자기 성정체성(sexual identity)과 성역할에 대해서 성숙한 태도를 가지며 만족할수록 딸과 아들에게 차별이 적은 관계를 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가 딸과 아들에게 차별없는 관계를 할 때에도 어머니의 관계는 딸과 아들에게 차이가 있다.
어머니는 딸이 여성이기 때문에, 아들이 남성이기 때문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색깔이 다른 사랑을 하게 된다.
어머니는 아들의 성기와 관련된 표현이나 접촉은 환영하지만, 딸에게는 이러한 표현을 덮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머니는 딸이 질(vagina)을 가졌다는 것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감추려고 하지만 아들의 성기에 대해서는 개방적이기 때문에 남성은 여성보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성기와 관련된 흥분이라든지 자극을 더 개방적으로 체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에는 감질나게 하고 허용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깊은 성애적, 전인적 관계를 하기가 어렵고, 어머니와 분리하기 어려운 만큼 여성과 관계를 끝내기도 어렵다.
Kernberg(1995)도 남성들이 남녀 관계에서 한 여성에게 깊은 헌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까지 많은 갈등을 극복하고 인내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남성은 여성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깊은 의심을 가지고 있으며, 사실은 상당히 의존적이지만 여성을 이상화한다든지 여성에게 의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또한 남성은 외디푸스기에 진입할 때 그 애정 대상이 어머니이기 때문에 외디푸스기에서 사랑 대상을 아버지로 바꾸는 여성보다 전외디푸스기의 갈등과 문제를 어느 정도 정리하고 마감하기가 더 어렵다.
따라서 남성들은 일차 대상으로부터의 분리가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애정 대상과 융합하고 거리를 지키는 능력에서 일반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특히 거세 불안이 심하고 자기애적인 병리가 있을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에 비해서 여성들은 어머니로부터 성애적인 것을 제외한 인간관계를 하고, 그러한 사랑을 아버지에게서 기대하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은 아들과 비슷할지 모르나 성애 능력과 관련하여서는 어머니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어머니가 딸을 아들처럼 생각한다든지 파트너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딸도 아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떠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프로이드는 여아가 남자 아이들같은 성기가 없는 “죄”를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탓으로 돌린다고 하였다.
인간의 모든 욕구 중에서 안정 욕구와 사랑의 욕구가 가장 클 것인데, 여성은 이 부족함을 아버지가 채워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가 자기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힘든 경험을 딸에게 투사하면서 항상 기쁘지만은 않기 때문에 어린 여아들은 어머니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오해는 여성의 전체 인생을 관통하는 아픔이 될 수 있다.
유아는 어머니로부터 사랑과 인정과 보호를 갈구하고 이것이 어느 정도는 충족 혹은 좌절된 상태에서 분리와 개별화 과정을 겪어내야 한다. 남아와 여아는 각각 다른 경험으로 다른 문제를 가지고 어머니로부터 분리하게 된다.
그들의 죄책감의 원인도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커플은 상대방이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부족한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하고 기다릴 수 있어야만 한다.
남녀는 비연속성(discontinuity)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비연속성은 Brownschweig와 Fain(1971, 1975), Green(1986, 1993)을 보라). Green은 비연속성을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으로 보았으며, 이는 어머니와 유아 관계의 비연속성에 그 궁극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였다.
비연속성은 어머니가 한편으로는 아이와 부드럽고 미묘한 애정을 나누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편과 성애적 관계를 하려고 돌아감으로써 일어난다.
어머니의 비연속성으로 인해 유아는 이미 생애 초기에 사랑에 좌절하고 사랑을 동경하게 된다.
사랑 관계에서는 두 파트너가 융합함으로써 가장 행복한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데, 바로 이 때 공격성도 최고 수준이 된다.
비연속성은 이러한 상황에서 커플 관계를 보호한다. 남성들은 성적 만족 후에 금방 잠이 든다든지 머리를 빗고 나간다든지 하면서 여성으로부터 급속도로 분리(separating)하는 현상이 많이 관찰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자가 여자보다 의존적 관계를 수립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성들의 이러한 행동은 성관계와 인간관계를 쉽게 분리하는 특성에서 오는 것이다.
여성의 비연속성은 자녀들과 상호관계하는 데서 정상적으로 활성화된다.
이 때 남성들은 자주 “버려진”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성은 어머니의 기능과 이성애적 사랑을 조화시키지 못한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성적 존재가 아닌 것처럼 오해한다. 여성들은 사랑 관계가 끝나면 그 사람과 성애적, 인간적 관계를 끝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들어가지만 남성들은 정서적인 인간적인 관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여성과 성애적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남성들은 성과 부드러움이 많이 분리되어 있고, 여성들은 인간관계 전체로 비연속성이 표현된다.
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이 여성이 사랑관계를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로 바꾸는, 어떻게 보면 어려운 성장 과정을 겪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남녀의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고 부족한 능력을 보완하도록 노력하며 기다려주는 것은 커플의 관계를 깊이있고 풍부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 여성과 남성은 어떤 대상을 원하는가? Kernberg(1995)는 여성과 남성 모두 여러 역할을 하는 대상을 원한다고 하였다.
여성은 성장 과정에서 일차 대상을 떠나 아버지로 사랑의 대상을 바꾸었던 경험으로 인해 아버지 역할과 어머니 역할을 동시에 하는 남성을 원하며, 동시에 어린 소년, 쌍둥이 자매 및 성적인 성인 남성을 원한다.
남성은 어머니, 어린 소녀, 쌍둥이 형제 및 성적인 성인 여성을 원한다.
그러므로 커플 관계에서 역할의 경직성은 관계를 대단히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경직된 역할 고착은 만성적인 부부 갈등을 유발시킨다.
예를 들면 의존적으로 매달리며 사랑에 굶주린 아내와 자기애적이고 무관심하며 자기중심적인 남편, 불안정하고 유치한 소년-남성과 지배하고 좌절시키며 통제하는 강한 아내, 성적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내와 성에 굶주린 남편, 서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남편과 아내, 비난을 일삼는 남편과 아내 등등. 커플 관계 혹은 부부 문제가 그들의 의사소통의 실패에 기인한다고 보는 관점은 정신분석적으로 볼 때 많은 경우 단지 피상적인 표면만을 다루는 것이다.
6. 초자아의 성숙과 집단 역동
Kernberg(1980)는 비구조화된 집단 구성원들은 그들의 유아기적 초자아를 집단에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관습적 도덕성(conventional morality)이 잠재기 아동의 도덕성과 놀랄만큼 유사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잠재기 연령의 아동들은 선과 악을 단순히 구분하고 성기기적인 성을 부드러운 애정(tenderness)과 분리하며 성을 알면서도 “순결하다(innocent)”. 성은 금지된 것이며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성기기적 성을 경멸하고 평가절하하며 성기관과 성행동을 더러운 것으로 지칭한다.
이렇게 미성숙한 잠재기 도덕성은 성숙한 정서적 관계를 특징짓는 모호성과 양가성을 견디지 못한다.
예를 들어 자기의 부모는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잠재기 아동들은 내용보다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연극적이고 과장된 행동을 선호하며, 깊은 감정보다는 감상주의를 좋아한다.
심오한 것보다는 단순하고 사소한 것을 좋아하며 심미적 가치보다는 대중적 인기가 있는 것을 좋아한다.
통속물의 특징은 감상주의, 상투성, 겉치레, 거대성, 단순성, 지적인 피상성, 유치한 이상 추구 등인데 이것은 잠재기 아동들이 선호하는 것과 유사하다.
Kernberg(1995)는 관습적 영화(혹은 대중 영화, conventional film)와 포르노 영화를 잠재기적 초자아가 분열되어 투사된 것으로 이해한다.
두 장르는 외디푸스적인 복합성과 모호성을 동반하는 성성(sexuality)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며, 열정적인 사랑을 감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의식적인 동행자이다.
Kernberg에 의하면 성숙한 커플과 성애적인 예술만이 열정적인 사랑을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성애적 사랑은 성숙한 초자아를 구축함으로써 공동의 가치 구조를 구축하게 되고 자기와 상대방의 한계와 결점을 견뎌내고 용서하는 가운데 감사하는 능력이 생긴다.
공동의 가치 구조는 전외디푸스기적 초자아 구조를 통합하면서 점차 부드러워지고 중성화된 가치로서, 커플을 다른 사람과 집단으로부터 경계지어준다.
이 가치 체계는 커플에게 창조적인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하고 커플이 해체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법정”으로서 하나의 신호체계 역할을 한다.
커플이 집단으로부터 고립되면 사랑과 공격성의 평형을 유지하기가 대단히 어려운데, 집단은 잠재기적 초자아를 고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커플은 집단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집단에 복종하거나 통제되지 않고 그들의 비밀스러운 사적인 관계를 그 속에서 계속 유지하면서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
사랑의 능력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조건과 사회적으로 주어진 운명에도 불구하고 개척할 수 있는 것이고, 학습할 수 있는 것이며, 노력을 통하여 성숙해질 수 있고, 심한 병리적 상태는 치료를 통하여 치유, 개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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