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유익/내설악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스크랩] 등산로의 안내표지판처럼

잔잔한 시냇가 2006. 9. 15. 21:33
    등산로의 안내표지판처럼...
    
    
    허리까지 차올라오는 수풀을 헤치고 인적이 드문 좁다란 숲길로 접어들었다.
    적막하고 신비로운 계곡길이다. 잎을 훌훌 털어버렸던 지난 겨울의 낙엽이 아직 
    쌓여있고 그 사이로는 온통 짙푸름이다. 
    주로 소나무와 신갈나무 그리고 서어나무,졸참나무, 물푸레나무, 박달나무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이름 모를 들풀은 제각기 앞을 다투어 하늘을 향한다.
    나무를 목조르며 칭칭감아 올라가는 칡덩쿨과 간간히 무더기로 내 키보다 크게 
    자란 갈대숲 사이로 이름모를 산새가 놀라 푸드득 날아오른다.
    다섯줄무늬 다람쥐는 언제나 바쁘게 재롱을 떨어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산길가로 탐스럽게 익은 산딸기를 한움큼씩 따 먹으며 걷다가  때로는 등산로를 
    완전히 덮어 어둑하게 서있는 산뽕나무 열매도 맛보았다. 시큼하고 씁쓸하지만
    단 맛도 숨어 있다. 그 맛이 온갖 조화로 빚어진 자연의 맛인데 우리 아이들은
    이 맛을 알까...?
    때로는 넓게, 때로는 좁은 바윗틈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은  맑고 깨끗하다.
    잠시 앉아 찌들은 내 마음을 씻는다. 물이 흐르는 길을 법이라 했다지..?
    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인것을 왜 인위적이며 강제적으로 우리 곁에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
    계곡과 가까워지다가 멀어지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나니 어느듯 계곡은 저 아래
    보이지도 않고 물소리도 가물거리다 들리지 않았다. 
    정상이 가까워 졌다는 것이겠지. 정상까지는 제법 가파른 길이다. 
    어느 산이든 정상은 쉽게 허용되지 않은 것.그래서 우리네 삶도 정상에 이르기 전에 
    좌절되는 경우가 흔한 것일까...?
    산 뿐만 아니라 자연과 우주든... 정상을 정복했다는 인간의 오만함이 거슬린다. 
    우리의 욕망을 덜어낼 수 있다면 굳이 정상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은 정상많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 삶에서 비굴하지 않고 성실하기만 하다면 누구나 정상에 있는 것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이지만 성실하게 임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문제는 문제를 낳고 의문은 또다른 의문을 낳는다.
    능선에 올라서니 네 갈레길을 가리키는 안내 표지판이 정겹다.
    안내 표지판....!
    표지판이 조금만 뒤틀려져 있어도 등산객에게 혼란을 줄것이다.
    정확하게 안내를 한다는 것은 생명과도 같지 않을까...
    나는 지금 저 표지판 처럼 정확하게 삶을 안내하는 자리에 있다.
    내 스스로 방황한다면 나에게 맡겨진 수많은 아이들의 앞날이 어찌 될까.
    올바른 길이라고 미리 판단하고 같은 방향으로만 이끌어가는 것은 타당한가?
    숲속의 깨끗한 물을 먹고도 소는 우유를 짜내는데 왜 뱀은 독을 품어낼까...
    네 갈래 길을 가리키는 안내표지판을 보고 등반객은 갈 길을 선택한다.
    내 역할이 무엇인지 더 확연해졌다. 그 다짐 또한 파도같은 리듬으로 
    내 가슴을 흔들고 있다.
    자 이제 부터는 산을 내려가자. 
    내가 계획했던 그대로 밟아보지 않은 길을 떠나보자.
    난 등산로의 안내 표지판을 믿는다. 
    능선에 서 있는 그 안내 표지판처럼 나도 우리 아이들이 굳게 믿을 수 있는
    안내 표지판이 되어 그 자리에 올곧게 서야한다.
    2003년 6월 소백산 등반길에서....
    
출처 : 강호연파
글쓴이 : 국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