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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理性과 神秘의 두 날개짓....

잔잔한 시냇가 2006. 10. 10. 22:23
  
理性과 神秘의 두 날개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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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3년 전 태백산을 다 내려와서 당골 근처 어느 계곡쯤
이었습니다. 20년 전 호젓한 바닷가에 같이 근무할 때는 사흘이 멀다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談論을 벌였지요. 국문학을 전공한 형이 세상을 보는 그 審美的眼目에 늘
저는 감탄하며 부러워했습니다. 얼마나 낭만적이던지요...
그러나 형의 일상적인 삶은 저보다도 더 짜임새 있고 규칙적이며 놀랄 만큼 계획적
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콩심은 데 콩이 나야 했었고 팥이 나면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형은 오히려 물리학을 공부한 저 보다도 더 기계적이고 客觀的으로 세상을 보았다고
판단됩니다.
P형...
오늘은 형을 그리워하며 치악산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한 여름인데도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채 1분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맑은 물은 바라만 보아도 좋습니다. 
방금 과학 영재 학생들과 함께 한 수업에서는  철저하게 異性으로 무장된 물리학에 
온 정신을 쏟고 나니 진이 빠져 이 깊은 계곡에 앉았습니다. 
형을 만나면 언제나 話頭는 哲學과 文學에서의 存在論이었고 異性과 感性의 본질적
문제였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 부족해서 늘 질문이 많았고 형은 술잔은 비울 사이도
없이 스스로 도취되어 명 강의를 했지요. 저는 형의 그 명쾌한 해석을 들으며 술잔 
부딫칠 여유도 잊은 채 홀로 잔을 비우곤 했습니다.
P형...
우리가 나눈 많은 이야기 중에 하나인 異性과 感性은 언제나 어려운 주제였다고 
저는 기억합니다. 오늘은 과학적인 측면에서 이성과 감성(본성)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理性과 意志를 가지고 자유롭게 책임을 지며 행동할 수 있는 주제를 페르소나(persona)
라고 하지요? 그런데 인간은 누구나 理性的인 本性을 지닌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모사피언스(Homo Sapience)로 이어지는 進化의 역사 속에서 原始的 慾望은 언제나 
겉으론 조용히가라앉아 있는 듯 했지요. 그렇다고 코스모스(Cosmos)처럼 잘 정돈된 
理性의 세계에서 우리는 진정 행복했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P형...
인간의 慾望을 이겨낸 理性의 역사는 自己合理化에 불과할 것이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인간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하는 존재임에도 이성과 본성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엄연한 잣대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인간은 욕망을 숨겨 놓은 채 동물과 영원히 분리된 듯이 보일 때도 많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욕망에게 規範의 굴레를 뒤집어 씌움으로써 원시욕망은 동물에게만 
있어야 했고 저주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닐런지요. 
결국 인간에게서 이성과 욕망은 곧 善惡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P형...
과학에서 이성과 본성이 구분되는 예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학은 우주와 그 안에 있는 우리의 위치를 알아보는 방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과학을 통해 우리는 모든 생명체, 그리고 크든 작든 모든 세계에 똑같이 적용되는 
일반 법칙을 찾아냈습니다. 물질, 에너지, 힘, 운동 등이 모두 그런 것들이지요.
과학적 방법은 지구라는 행성과 이 행성의 역사 안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역활로 
우리의 시선을 이끌어가기도 합니다. 
지구는 까마득한 옛날에 다른 모든 행성이나 항성들처럼 우주의 먼지와 파편으로부터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지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행성으로, 탄생한 이래 오늘날까지 그 위의 대륙과 해양은 
수십 번씩 생겨났다가는 사라지고, 없어졌다가는 다시 나타나곤 했지요.
하물며 생명현상의 다양함은 이루 다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가끔 우리는 인간이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예외라고 생각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뭔가 특별하고, 보호받고 있으며, 다른 생물 위에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인간도 살아 남기 위해 에너지와 영양소를 얻으려고 싸우는 무수한 
생물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할 것입니다.
결국 인간도 본성이 가중 소중한 밑 바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P형...
지구 생태계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라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성이 욕망을 억압하는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지구 위에서 어떤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이성과 욕망에 대한 混沌을 느낍니다.
물론 생명의 역사에서 나타난 어느 種과도 달리 인간은 자원을 이용하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터득했지요. 과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우리의 세계를 즐길 줄도 
알며 철학과 종교를 가지고 우리의 독특한 역활이 갖는 의미를 찾을 줄도 압니다. 
이렇게 형과 의미있는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도 있구요.
P형...
인간은 처음부터 매우 호기심이 많은 생물인가 봅니다.
성서의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서도 그렇잖아요.
그런데 과학은 어느 틈엔가 이러한 지적 욕구를  채우는 데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 것 
같습니다. 물론 과학은 인간만이 가지는 위대한 모험이지요.그 안에는 엄청난 도전, 
갑진 선물, 새로운 기회, 유례없는 책임 등이 함께 들어 있기에 욕망은 언제나 이성의 
그림자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과학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과거를 더듬어 보기도 하고, 아득히 먼 우주까지 내다보며 우주를 움직이는 힘이 
결국 하나라는 것도 알아냈지요. 지금 아마 우주에 가장 가까이 근접한 사람이 
호킹(Hawking, Stephen William)박사가 아닌가 싶네요. 스스로 그 어려운 역경을 딛고
그는 우리에게 우주를 바라보는 가장 이성적인 눈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과학으로 얻은 지식으로 무장하고 우리는 질병과 싸우며,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고,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과학은 우리의 행위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도 주며 아마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지혜도 알려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을 진리처럼 盲信하고 있는 우리들의 自畵像이란 생각이 듭니다.
P형...
흥에 겨울때 형이 즐겨 읆조리던 李白의 春夜宴桃李園序을 생각합니다.
저 천지(天地)란 만물(萬物)의 역려(逆旅: 여관)요, 
광음(光陰)이란 것은 백대(百代)의 과객(過客)이라!
뜬 구름같은 인생은 꿈만 같으니 즐거움이 그 얼마나 되련가? 
옛사람들 등불을 들고 밤 늦도록 놀았다하니 진실로 이유있도다! 
하물며 지금 화창한 봄날이 아지랑이 일렁이는 경치로 나를 부르고,
대자연(大自然)이 나에게 화려한 문장(文章)을 빌려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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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이백의 詩에서 이성과 본성을 구분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것 같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구분이 없으면 긍정도 부정도 없으며 인간의 
豪放함은 느껴지나 철저하게 理性을 부각시기는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P형...
莊子의 양생주(養生主)편에서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으되, 앎에는 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뒤쫓자니 위태로울 뿐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아직도 전 위태롭기 그지 없습니다. 
결국, 자연의 도리에 따르는 것을 기준으로 삼을 것 같으면, 몸을 온전히 지킬 수 
있을 것이요, 일생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이고, 어버이를 부양할 수 있을 것이며,
天壽를 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흘려 듣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성인은 그런 것에 의지하지 않고, 자연의 본성을 觀照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의 도리에 맡긴다는 뜻이겠지요.
P형...
가끔 우리가 神話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무질서하게 보여지며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그런 세계 말입니다.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어릴적 동화의 나라를 그리워하는 것은 
형도 마찬가지일 듯 싶습니다.
이제 慾望, 本性, 感性이란 단어 대신에 그 모든 개념을 神秘라는 말로 바꾸어 
불러보고 싶습니다. 
理性과 神秘!!!! 참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P형
理性과 神秘는 항상 共存하고 있습니다.
서로 얽혀 있는 듯이 보이는 이성과 신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어차피 풀어내야만 우리는 겨우 어디론가 날아갈 것 같지 않습니까...?
언제나 형은 이성과 신비의 날개짓을 무던히도 펄럭거렸고 
저는 참 많이도 움츠렸던것 같습니다.
오늘도 이성과 신비의 날개는 펴지지 못한  채 계곡을 내려옵니다.
다시 비가 올듯해서 그런지 저녁 노을빛이 심상치 않습니다.
더운 여름에 형도 이젠 건강도 좀 챙기시지요.
2003. 7. 치악산 계곡에서 S.K
 
출처 : 강호연파
글쓴이 : 국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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