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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네가 도움을 받지 못한 것에 가슴 아프다 / 장기려 그사람

잔잔한 시냇가 2007. 9. 6. 07:13

 

지니아 공대 캠퍼스의 중앙  "드릴 필드" 잔디밭에 

조승희를 포함한 사망자의 넋을 기리는 33개의 추모석이 세워졌는데

왼쪽에서 4번째 "조"의 추모석 앞에는 아래 글귀가 씌여진 

종이가 놓여있다는 외신보도가 우리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합니다.

 

I feel bad in knowing that you did not get help

that you so desperately needed.   I hope in time that your family will find comfort and healing.  God bless.  Barvara

 

"네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필요로 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아프다.  머지않아 네 가족이 평온을 찾아 치유되기를 바란다.

신의 가호를.  바바라"

 

 

 

몇마디의 글이지만 미국인의 위대한 정신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 한국인에게 던지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60 여년 긴 세월을 이어온 한.미 관계를 다시 상기시켜주고

"여학생 사망사건" 등에서 보여준 일부의 반미 감정표출에 대해

부끄러워 머리를 숙이게 만드니까요.

 

 

 

신의 이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어려운 지경의 남을 생각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과는 연관은 없지만 한 후배 블로그(출처:신환-

용원)에서 한국의 "슈바이쳐" 장기려 박사에 관한 글이 눈에 띄어

발췌하여 첨부합니다.

 

대한 한국인이 되어 세계 속에 사랑받는 친구, 기다려지는 친구로

남아야겠기에 배경음악을 김경남씨의 "님의 향기"로 했습니다.

 

 

 


장기려, 그 사람 (글쓴이: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나는 젊은 학생들에게 강연할 때 가끔 장기려 박사를
아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고 한다.
손을 드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런데 테레사 수녀를 아는 학생은 매우 많다.
외국의 성자는 잘 알면서 한국의 성자는 모르는 현실이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다.

장기려 박사는 무소유 원칙으로 일생을 보내고
10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서울대, 부산대 의대교수, 부산 복음병원 원장을 지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방 한 칸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소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부산 복음병원 원장으로 계셨을 때의 일화다.
어느 생활이 어려운 분이 퇴원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막막하고 있을 때 장기려 박사가 그 사실을 눈치 채고 병원
뒷문으로 몰래 빠져 나가게 해 주었다.  이 일을 통해
그의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6.25때 부인과 자녀들을 북한에 두고 아들 하나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그의 부인은 이광수의「사랑」에 등장하는
‘안빈’의 모델로 알려진 분이다. 그가 부인을 그리며 1990년에 쓴
망향편지는 우리들의 가슴을 에이게 한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 듯하여 잠을 깨었소.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달려가 문을 열어 봤으나
그저 캄캄한 어둠뿐…
허탈한 마음을 주체 못해 불을 밝히고 이 편지를 씁니다. 여보…."

미국에서 북한을 많이 도운 그의 제자 김윤경 박사가 북한당국과
합의하여 중국에서 장기려 부부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그 기회를 사양하였다.

그런 특권을 누리면 다른 이산가족의 슬픔이 더 커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최근에 「장기려 그 사람」 이라는 책이 나왔다.
그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여러분, 위대한 한국인으로!


     

     

     

    출처 : Blue Bird(명화정)
    글쓴이 : 명화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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