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어제 온 가족들이 모여서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하였다.
막내딸은 항상 말하기를
“엄마 내 엄마 맞아.. 혹시 계모 엄마인지도 몰라 ..
하면서 정에 갈급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항상 피곤하다고 응석을 부린다.
말을 타고 강을 건너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강을 다 건넌 후에 갑자기 상류에 쏟아진 폭우로 인하여 강물이 불어났다.
뒤따르는 아이는 아버지를 향하여 도와 달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아버지는 태연히 서서 말하기를 “말고삐를 당겨라 . 강기슭을 봐라 . 용기를 내라”고 외치기만 했다.
아들이 무사히 강을 건넌 후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하였다.
“만약 내가 강에 뛰어 들어 널 도와주었다면 넌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 예화라고 한다.
미국시민의 독립정신을 깨우쳐 주는 한 교훈담이다.
우리 정서로 보면 그렇게 쌀살 맞은 아버지 일수도 있다.
아이가 익사할 수도 있는 위험상황에 그렇게 하기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미국 부모들이 모두 그런 것이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키워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인 것 같다.
한국 부모들은 정에 무른 탓인지 어릴 때부터 자식들의 응석을 모두 받아주는 셈이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다급한 상황이 되면 자식의 생명과 연결고리가 얽혀 있듯이 내가 대신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성인이 된 후에도 한국인들에게는 의존성이 많은 것 같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극단의 진리는 없다.
만약 물이 불어서 자식의 생명을 눈앞에서 잃어버렸다면 그 아이는 독립심을 가진 어른이 되기 전에 아이로서 성장할 기회를 놓쳐 버렸을 것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 아이는 성장과정에서 자기를 외면한 아버지를 훌륭한 아버지로 여기고 존경의 대상이 될 것인가 아니면 매정한 아버지로 낙인 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의지적이고 독립적인 미국 아이들은 부모님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무엇으로 표현할지 궁금해진다.
부모님과 고향.
말만 들어도 코끝이 찡해 짐은 어린 시절 목숨같이 자기를 사랑해 주었던 부모님의 추억 때문에 더 뭉클해지는 것이 아닐까?
큰딸은 항상 장녀답게 매사에 독립심이 강하다.
그 많은 설거지를 스스로 하면서 동생들에게 시키고 일을 마무리 한다.
큰딸이 살림 밑천이란 말이 예사로 생겨난 말이 아닌 것 같다.
독립심도 아이들에게 심어 주고 무조건 사랑하는 정도 가르쳐 주는 부모님이 제일 좋은 부모님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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