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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피카소와 그의 여자들.

잔잔한 시냇가 2007. 9. 29. 13:29

  

 

피카소-게르니카 벽화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  

나는 어린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다.>


피카소!

그는 인생과 예술을 사랑하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했기 때문에  부와 명예를 얻었다.

20세기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는 1973년에 세상을 떠났다.

1881년 스페인 말라가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사산이라 판단하고 버리려고 했지만 그의 삼촌이 담배 연기를 그의 입속에 불어 넣으므로 그가 살아나 울었다고 한다. 결국 그 삼촌이 피카소의 생명의 은인이 된 셈이다.



무명시절의 피카소는 아무도 그의 그림을 원하지 않았기에 레오 형제들이 첫 작품 <꽃바구니를 든 소녀>를 30달러에 샀다. 약 3년 동안 그들이 독점구매 한 후에 나중에 그들 형제가 돈이 없었기에 피카소는 그들에게 무료로 그림을 기증했다고 한다.



피카소는 1973년 프랑스 남쪽 지방의 어느 마을에 있는 4개의 개인 창고에 다음과 같은 유품을 남기고 죽었다. 그림 1,876점.  조각 1,355점. 도자기  2,880점. 스케치와 데셍 11,000점, 부식 동판화  27,000점.  판화 석판 인화 등이었다.

그의 재산도 엄청나서 1,251,673,200 프랑크이었다.

이것을 다르게 환산해 보면 이억 오천만 달러에 해당된다.


1988년 피카소의 그림 중 <곡예사와 어릿광대>는 38,000,000달러 에 팔렸다.

지금까지 피카소 작품 중 최고가는 2004년 소더비에서 1억 400만 달러(약 977억 원)에 팔린 <파이프를 든 소년>이었다.  피카소의 연인 초상화 <도라 마르>가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피카소 작품가 사상 두 번째로 높은 9520만 달러(약 899억 원)에 판매됐다.



화가로서 확고한 자리가 정해진 후부터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서 서명한 것도 유명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의 생애 전체를 통하여 많은 여인들과의 인연 또한 특별한 것 같다.

화가들이나 예술가들은 이런 특별한 애정행각을 가지므로 그의 뛰어난 예술성이 바로 그 여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여하튼 그는 많은 여인을 선택하고 버리기도 했다.



피카소는 여인들과 평균 10년 주기로 동거를 했지만, 정식 결혼은 올가와 프랑스아즈 두 사람이었다.

여러 여인들 중 7명은 피카소의 작품에 영감을 준 중요한 인물들이다.


   

피카소가 62세 때 프랑수아즈 질로 그녀 나이는 22세였다.

프랑수아즈 질로 그녀는 피카소의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먼저 그를 버렸다.

그 이유는 피카소가 그녀의 친구인 여 기자와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로는 그의 아들과 딸을 피카소에게 입적하는데 성공하고 훗날 그의 자녀가 많은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프랑수아즈가 떠난 뒤 피카소는 더욱 열정적으로 수많은 여인들을 만났다.

이미 70살이 넘은 피카소였지만 젊은 여인에 대한 열망은 그칠 줄 몰랐다.


피카소의 마지막 연인이 된 자클린 로크

피카소 나이 72세에 만났다.

80대의 피카소와 30살의 자클린은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피카소가 죽자 그가 만났던 수많은 여인들과 그의 후손들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피카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리 테레즈는 목을 매달았으며 자클린은 1986년  권총 자살을 했다.

올가와 피카소 사이에 난 아들 파울로는 약물 중독으로 죽었고, 피카소의 손자 파블리토는 피카소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왔다가 자클린이 완강하게 거절하자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피카소의 그림과 미술품에 대하여 문외한에 불과하지만 그의 부와 명성에 대하여서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난해한 그림들은 그를 더 유명한 화가로 만들었던 것 같았으며 프라도 미술관에서 그 유명한 그림들을 한참이나 서서 감상하면서 희한한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그의 그림 <한국동란의 학살>의 섬직한 그림을 상기함은 웬 일일까.

한국에 한 번도 와 본적이 없는 피카소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쟁 당시 유럽 공산당원들이 반미의 용도로 사용한 피카소의 학살도가 5년 후 소련군의 헝가리 침범에 반대하는 포스터로 폴란드에서 널리 사용했다는 것이다.


어떤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인지…….

오래전 일본 전시에서는 피카소의 그림을 거꾸로 전시한 적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2006년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전시한 적이 있었다.




 

올가

 

 

마리 테레즈

 

 

                                                                작크린의 초상

출처 : 언덕에 올라
글쓴이 : 아카시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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