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사회/역사의 향기

[스크랩] 징키스칸의 후손들.

잔잔한 시냇가 2008. 7. 6. 16:12

 

 

 

 


 


누가 몽고인을 야만인이라 불렀던가?

역사는 승자 편에서 기록되는 것이라 하지만 이 말은 패자 측에서 기록한 몽고인이다.


불과 700년 전, 칭기즈 칸과 몽고족은 역사를 놀라게 할 만큼 거대한 제국을 세웠다.

서방세계에서 십자군전쟁이 벌어져서 세력 판도에 대이동이 전개되고 있을 당시 동양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세력 판도에 요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몽골족의 칭기즈칸이 졸지에 등장하여 동양세계는 물론 중앙아시아와 동부유럽을 강타하는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킨 것이 바로 그것이다.


동쪽으로는 한반도의 고려가 무려 80여 년 간에 걸친 몽골의 지배하에 들어가 정치적인 간섭이나 압박은 물론 경제적으로 많은 수탈을 감내해야 했고,

문화적으로도 이른바 몽고풍이 도입되어 변발과 호복으로 심각한 영향을 입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몽골군의 일본정벌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막대한 손실과 부담을 안은 역할을 담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돌풍은 서쪽으로 서 유럽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당시 서 유럽인들은 동양으로부터 오는 세계정복자가 서양인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살육하여 멸망시킬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다 한다.

칭기즈칸의 돌풍은 서양인들로 하여금 이를 실제로 체험하게 한 것이다.

징키스칸.

세계사 일천년간 가장 뛰어난 명장으로 뉴욕포스트지가 뽑은 인물이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칭기즈 칸이 단순한 정복자가 아님이 알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의 생애를 통해 그를 이해하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한 가지 목표가 달성되기가 무섭게  다음의 새로운 목표를 세우면서 그의 부족을 이끌어  주변국가로부터의 위협을 없애면서 중국 땅을 넘었다.


초원의 굶주림은 유목민들로 하여금 항상 전사가 되게 만든다.

하루에 백리 이 백리를 달릴 수 있는 말과 화살로 단련된 그들은 세계를 정복하였다.

그들에겐 보급로가 없다.

전승지에서 저항하면 가차 없이 잔인하게 살육하고 항복하면 현지보급을 하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정복하였다.

도시를 점령하면 그 지역 주민들을 다음 전투지 까지 끌고 가서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전투에서는 몽고군에 의하여 주민 한 사람도 살아남지 않고

도시는 완전히 폐허되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44명의 아내가 있었고 정복지 마다 그의 여자들이 있었다.

몽골인의 0.8퍼센트가 징키스칸의 유전자를 가졌다고 한다.

세계 인구 삼천 이백만명이 그의 DNA로 추산된다고 하니 200사람 중의 한 사람이 징키스칸의 DNA를 가진 셈이다.

징키스칸의 재산은 황금과 땅이 아닌 사람이었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이후에는 원나라 공주가 왕후가 되어서 이른바 부마국이 되었기에 우리나라 왕실에도 몽고인의 피가 흐르게 되었다.

마산에 가면 몽고정이란 우물이 있다.

혹시 징키스칸의 DNA가 우리 들 속에도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출처 : 언덕에 올라
글쓴이 : 아카시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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