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평화로 꽃피움,명쾌하고 쉬운 가르침,종파·벽 깨는 열린자세
지난 16일 방한한 베트남 출신의 선사 틱낫한(77) 스님이 가는 곳엔 늘 많은 취재진과 인파가 몰려든다.
‘틱낫한 신드롬’이고 할 만하다. 이런 열풍에 대해 ‘문화 사대주의’란 비판과 함께 그가 상업주의에 이용을 당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논쟁 이전에 ‘인간 틱낫한’의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찾게 한 것일까.
개인의 고통과 평화 체험에 머물지 않는 실천
틱 스님은 베트남 중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한 사진 속의 평화로운 스님의 모습을 보고 그처럼 평화로워지기 위해 1942년 16살에 출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의 고통이 늘 그를 에워쌌다. 1946~54년 베트남 지배를 유지하려고 전쟁을 벌인 프랑스의 군인들은 먹을 것을 뺏으려 사찰을 공격했고, 저항운동에 가담한 승려들을 잔인하게 처형했다. 틱 스님은 “당시 프랑스 병사들이 너무나 싫었다”고 고백할 만큼 자신도 고통 속에 있었지만, 그는 그 증오심에 매몰돼 있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 병사를 진정한 친구이자 형제로 받아들였다.
또 그는 60년대 미국순회 강연을 통해 미국에 의한 베트남 전쟁의 비극과 반전 평화를 호소했다. 또 불교평화대표단 의장으로서 파리평화회의를 이끌며 비극의 종식을 호소했다. 그에 의해 ‘참여불교’란 말이 등장했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는 평화에 대한 솔직한 표현들을 문제삼아 그의 귀국을 금지했고, 그는 73년 프랑스로 망명해 시골마을에서 베트남식 불교 사원공동체 ‘플럼빌리지’(자두마을 또는 매화마을)를 가꾸며 고국의 전쟁 고아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처절한 전쟁 속에서 평화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현실에서 평화를 찾도록’ 일깨우는데 일생을 바쳐 세계의 평화운동가들로부터도 깊은 존경을 받고 있다.
우리 나라도 베트남 못지 않게 일제와 6.25, 독재 속에서 대중들이 신음했지만 만해 한용운·백용성 스님 등 일부 스님들을 제외하면 불교계가 대중들의 고통에 함께 하기 보다는 불교계 내부의 문제에 몰입하거나 선적 깨달음을 중생의 고통 해소에 활용하지 못하고, 미륵과 극락 등 현실 도피적 내세주의를 설파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이다.
그의 처신을 보면 그의 언행이 정치적 입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불교적 자비심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늘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이라크를 공격한 부시 대통령에게는 “고통을 준 만큼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그러나 2001년 미국 뉴욕의 9.11 테러 이후에는 현지에서 10일 간의 단식을 이끌며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로했다.
그는 “고통을 회피하지 말고, 고통의 원인을 직시하고, 이해하는 게 수행”이라며 “고통을 통해 (상대에 대한) 이해와 자비를 가질 수 있으며, 이해와 소통을 통해 평화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상대의 말을 귀기울여 경청하고, 서로 소통하라는 것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났기에 더욱 아름답다. 그도 음유시인이거나 명상가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쟁 체험 속에서 세상에 평화의 꽃을 싹 틔우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쉽고 명쾌한 가르침
그의 가르침은 아주 쉽다. 서구 사회에서 이미 20~30년 전부터 틱 스님이 달라이라마와 함께 대표적인 ‘영적 스승’으로 꼽힌 것은 가르침의 보편성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 서점의 동양 및 불교 코너에선 달라이라마와 틱 스님의 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의 가르침은 쉽지만 깊이가 결코 얕지 않다. 달라이라마가 그의 저서를 애독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가르침은 진리의 정수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외부에 열린 마음
그는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것을 보여주었다. 베트남 사찰에서 배운 불교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종교와 인종, 국적에 상관 없이 모든 사람이 불법을 자신과 그 사회의 평화를 이용해 사용하도록 최대한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그의 열린 자세는 종교의 종파와 종교의 벽을 무색하게 한다. 서구에서 인종·성차별 폐지 등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간디와 함석헌 등도 영향을 받은 미국 펜들힐과 영국 우드브룩 등 기독교 퀘이커(무교회주의) 공동체들에서 이제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적지않다. 개신교의 대표적 영성공동체는 브루더호프도 그의 영향으로 식단의 음식 수를 줄이며 더욱 검소한 삶으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 유니온신학교 정현경 교수 등 기독교 영성가들도 종교를 뛰어넘어 그의 제자를 자처하고 있다. 22일엔 툭 트인 광장에서 틱 스님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이날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에서 걷기명상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고, 이어 오후 2시 서울 시청 앞에서 10만 여명이 모인 가운데 이라크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평화염원 걷기명상’을 이끈다.
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틱난한 스님 책 홍수
'힘','죽음도 없이‥'등 신간 쏟아져
‘틱낫한 붐’을 타고 신간이 쏟아진다. 틱 스님의 책을 선구적으로 번역 소개했던 이현주 목사가 이런 경쟁적 출간이 싫다고 더 이상 번역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다.
<화>의 성공에 힘입어 이번에 틱 스님을 초청한 명진출판(주)은 <힘(power)>과 <틱낫한 스님과의 소박한 만남>을 펴냈다. <힘…>은 틱 스님의 수행인 ‘마인드풀니스’를 설명한 책이다.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나무심는사람)는 “태어남과 죽음은 여행길에서 통과하는 문지방일 뿐”임을 깨우쳐준다.
또 열림원은 걷기명상을 다룬 <미소짓는 발걸음>을 비롯한 <틱낫한의 사람의 가르침>, <주머니 속의 조약돌>, <구름 속의 외딴집> 등 4권을 동시에 펴냈다.
이와 함께 <틱낫한 마음의 행복>(보보스)과 <내 스승의 옷자락>(청아출판사)이 나왔다.
이미 출간된 책 가운데는 틱 스님의 첫사랑과 금강경 얘기가 담긴 <틱낫한의 사랑법>(나무심는사람)과 그의 깨달음의 시를 담은 <부디 나를 참이름으로 불러다오>(두레)가 있다.
또 일상 속에서 깨어있음을 가르친 <지금 이 순간, 경이로운 순간>(한길)과 <거기서 그것과 하나 되시게>(나무심는사람) 등이 있다.
조연현 기자
●틱스님의 '마인드풀니스'란
들숨날숨 호흡통함 마음챙기기 수행법
평화를 이루는 불교적 깨달음은 수도자가 아닌 보통사람들에겐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는 오직 들숨 날숨의 호흡만을 관찰함으로써 평화를 맛보도록 한다. 이것이 그의 수행의 핵심은 마인드풀니스(깨어있는 마음, 마음 챙김,
마음 집중)다.
생각을 따라 방황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머물러 숨을 쉴 때는 쉬는 줄을 알고, 걸을 때는 걷는 데만 집중하게 한다. 늘 ‘과거의 걱정’이나 ‘미래의 계획’, 생각에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매사에 하는 일 자체에서 기쁨과 평화를 만끽하도록 하는 것이다.
조연현 기자
자료: 한겨레신문 2003.03.20(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