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 황제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한족 속에 뿌리내려 오늘의 중국이
있게 한 황제
그는 강희 황제라고 할 수 있다
강희와 옹정 두 황제의 태평성세에 힘입어서 오늘의 중국 판도가 넓혀졌으며
현대사의 중국이 세계의 중국이 되게 하였다
그는 청나라 조정이 자금성의 주인이 된 후 처음으로 자금성에서 태어나서 자란
군주였다
여덟 살에 즉위하여 열 여섯에 보좌 정치를 과감히 물리치고
정권을 손 에 진이래 사십 대 중반까지 거의 삼십년간을 연이어서
닥치는 어려운 위기를
명석한 예측과 침착한 결단력과 용기로 훌륭히 이겨냈다
강희제는 스스로 수양에 힘쓰며 고상한
인격으로 온 세상을 감화시켜 지상낙원을 구현하는 주자가 가르치는 성왕정치를 목표로 한 보기 드문 군주였다
중국인들은 이상적인 인간을
황제 즉 하늘의 뜻을 지상에 펴는 대리인으로 받드는 습관이 있었고 몽고인 역시 원나라이래 절대적인 신성한 칸의 존재가 아쉽던 차에 유능한
지도자로서 강희제는 그들의 참다운 황제 절대 군주자리에 서게 되었다
비로소 몽고인이나 중국인들이 그들을 통치하는 진정한
주인으로 청나라를 받아들이게 됨은 그의 육십 년의 정치가 주자학에 나오는 성왕정치를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위해 중국의
고전을 읽고 자기 수양에 힘썼으며
도덕면에서도 금욕주의를 강조하고 있었다
강인한 체력으로 자기수양을 하였으며 술 담배도 않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를 토하면서 까지 사서 오경과 서양 신부에게 부탁해서 기하나 천문학까지 연구했다고 한다
한 주일에 세 번 하는 강의를
매일 하게 하고 3번의 난중에도 아침 7시에 열리는 정무 시간 이전에 강의를 듣기 위해 교수하는 학관을 불러 한밤중에 입궐하게 했으며 이러한
생활은 60년 치세 중 끝내 변하지 않았다는 군왕이다
강희 황제는 천하를 다스리는 지엄한 군왕의 길을 걸었으며
그의 권세
또한 대단한 것이지만
그는 자기 스스로를 그의 천하를 위하여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임을 알았고
본인 스스로는 지엄한 군주로서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군왕이다
오늘날 중국의 역사 가운데서 백성과 중국을 그 만큼 사랑했던 군왕이
있었을 까
자기 스스로가 수도사와 같이 자기를 혹독하게 절제한 것은 그의 천하를 그의 백성들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그는 불철주야 애쓴
흔적들을 볼 때 전제군주시대의 제왕이라도 저렇게 자기를 절제할 줄 알고 법을 따르는 일들은 참으로 본 받을 만한 역사 속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제의 아들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삼십 오명의 황자가 있었지만 자기가 선택한 황태자까지도
물리친 것을 볼 때 황제의 아들의 불행을 실감하게 된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한 황제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강희는
영점이지만 청나라 백성에게는 최고의 성군이며 태평 성세를 이룬 군왕이다
대의를 위하여서는 가정과 자녀도 희생되어야 하는 일들이 안타깝지만
중국 역사 중의 가장 위대한 황제다
역사는 위대한 사람들의 희생의 대가로 빛을 내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 > 역사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할렐루야 코러스 (0) | 2010.05.09 |
---|---|
[스크랩] 링컨의 2분 연설 (0) | 2010.05.09 |
[스크랩] 향비 이야기 (0) | 2010.05.09 |
[스크랩] 카틴 숲 학살사건 (0) | 2010.05.09 |
[스크랩] 6, 25. 전화(戰禍)다시 보기 어려운 처음 공개 귀한 자료 (0) | 2009.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