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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능소화] / 김윤자

잔잔한 시냇가 2011. 1. 9. 03:31


 

♧ 능소화 - 김윤자


어머니, 지금

일흔 세 개 생명의 촛대 들고

능소화 허릿길 휘휘 돌아

하늘로 오르신다.

가슴에 또아리 튼 몹쓸 병마는

하나씩, 둘씩 빛을 지우고

여름이 지는 날, 한줌 소나기에

부서지는 잿빛 희망

흙마당에 덩그러니 누워

채 눈감지 못한 저 눈부신 슬픔

시린 세월, 눈먼 꼭둑각시로

사랑의 독항아리

씨물까지 다 퍼주고

바싹 마른 우렁이 껍질, 빈몸

어머니,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못하여

연황빛 고운 입술

하늘 이슬로 목축이시며

삭은 나무 등을 빌어 오르시더니

하룻밤 찬비에

저리도 쉬이 으스러지실까.

출처 : 김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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