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소화 - 김윤자
어머니, 지금
일흔 세 개 생명의 촛대 들고
능소화 허릿길 휘휘 돌아
하늘로 오르신다.
가슴에 또아리 튼 몹쓸 병마는
하나씩, 둘씩 빛을 지우고
여름이 지는 날, 한줌 소나기에
부서지는 잿빛 희망
흙마당에 덩그러니 누워
채 눈감지 못한 저 눈부신 슬픔
시린 세월, 눈먼 꼭둑각시로
사랑의 독항아리
씨물까지 다 퍼주고
바싹 마른 우렁이 껍질, 빈몸
어머니,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못하여
연황빛 고운 입술
하늘 이슬로 목축이시며
삭은 나무 등을 빌어 오르시더니
하룻밤 찬비에
저리도 쉬이 으스러지실까.
출처 : 김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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