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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ㅡ 신화같이 다비데群들(신동문)

잔잔한 시냇가 2015. 4. 27. 16:09

 

 

신화같이 다비데

 

신동문

 

서울도

해 솟는 곳

동쪽에서부터

이어서 서 남 북

거리 거리 길마다

손아귀에

돌 벽돌알 부릅쥔 채

떼지어 나온 젊은 대열

ㅡ 신화같이

나타난 다비데

 

혼자서만

야망 태우는

목동이 아니었다

열씩

백씩

천씩 만씩

어깨 맞잡고

팔짱 맞끼고

공동의 희망을

태양처럼 불태우는

ㅡ 새로운 신화 같은

젊은 다비데

 

고리아테 아닌

거인

살인 전제 바리케이드

그 간악한 조직의 교두보

무차별 총구 앞에

빈 몸에 맨주먹

돌알로써 대결하는

ㅡ 신화같이

기이한 다비데

 

빗살치는

총알 총알

총알 총알 총알 앞에

돌 돌

돌 돌 돌

주먹 맨주먹 주먹으로

피비린 정오의

鋪道에 포복하며

신화같이

육박하는 다비데

 

저마다의 가슴

젊은 염통을

전체의 방패삼아

貫革으로 내밀려

쓰러지고

쌓이면서

한 발씩 다가가는

ㅡ 신화같이

용맹한 다비데

 

충천하는 아우성

혀를 깨문

앙까님의

요동치는 근육

뒤틀리는 사지

약동하는 육체

조형의 극치를 이루며

ㅡ 신화같이

싸우는 다비데

 

마지막 발악하는

총구의 몸부림

광무하는 칼날에도

일사분란

해일처럼 해일처럼

밀고 가는 스크럼

승리의 기를 꽂을

악의 심장 위소를 향하여

ㅡ 신화같이

전진하는 다비데

 

내흔드는

깃발은

쓰러진 전우의

피 묻은 옷자락 허영도 멋도 아닌

목숨의 대가를

절규로

내흔들며

ㅡ 신화같이

승리할 다비데

 

멍든 가슴을 풀라

피맺힌 마음을 풀라

막혔던 숨통을 풀라

짓눌린 몸뚱일 풀라

포박된 정신을 풀라고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고

이기라

이기라

이기라고

 

다비데여 다비데들이여

승리하는 다비데여

싸우는 다비데여

쓰러진 다비데여

누가 우는가

눈물 아닌 핏방울로

누가 우는가

역사가 우는가

세계가 우는가

신이 우는가

우리도

ㅡ 신화같이

우리도

운다.

 

 

 

  총 10연에 달하는 이 시는 혁명의 현장을 목격한 시인의 감격이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사일구혁명을 대표할 만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 시의 모티브는 프랑스 7월혁명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의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성경에 나오는 거인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던 듯하다. 신동문은 골리앗을 고리아테, 다윗을 다비데라고 표기했다. 한편으로는 프랑스대혁명을 대표할 수 있는 화가 다비드를 지목하여 시를 쓰면서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을 다비데이라 지칭한 것이라고도 여겨진다. 프랑스의 화가 다비드는 급진적인 자코뱅당의 일원이었고 <마라의 죽음>이라는, 프랑스대혁명을 이끌었던 정치가 마라의 암살을 슬퍼하면서 그림을 그린 적도 있었다.

 

 

  17931015일 다비드는 완성된 <마라의 죽음>을 혁명을 이끈 국민의회에 넘겨주었다. 그림은 혁명의 상징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의 복제품을 향불 연기가 피어오르는 교회 제단 위에 전시했다. 심지어 그 복제품을 십자가상이나 왕의 초상화들 대신 관청 사무실에 걸게 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바로 그 무렵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했고, 다비드는 체포되었다. 1795210, 다비드의 그림은 국민의회 회의장에서 제거되었다. 로베스피에르 실각 이후 다비드는 투옥까지 되었지만 나폴레옹은 다비드를 꺼내주면서 궁정화가로 중용했다. 하지만 1814년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했고 유럽 동맹군들은 파리로 진격했다. 그들은 나폴레옹을 퇴위시킨 후 엘바섬으로 귀양을 보냈다. 영웅의 실각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몰락을 불러왔는데 1816년 다비드도 브뤼셀로 망명하여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무튼 이 시에서 중요한 낱말은 隊列이고 이다. 한꺼번에 수만 명이 대열을 이루어 데모를 했다는 점을 시인은 주목했다. 이들은 공동의 희망을 태양처럼 불태웠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 혁명 이념의 순수함과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열정에 주목한 시가 바로 神話같이 다비데이었다. 신동문은 또한 419일 당일의 현장 모습을 이 시를 통해 사실적으로 전해주었다.

 

  ㅡ이승하, 한국문학의 역사의식(문예출판사)에서

 

 

                                                                                      신동문 시인

 

출처 : 이승하 : 화가 뭉크와 함께 이후
글쓴이 : 이승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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