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사회/역사의 향기

[스크랩] 자살을 시도한 폴 고갱

잔잔한 시냇가 2006. 9. 20. 09:32
 
 
 

(아를르에서 고호를 떠나 1889년 4월에 세번째로 퐁 다벵으로 갔다가 
루 뿌르두 하숙집 식당의 찬장 위쪽 거울 판에 이 그림을 그렸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동료들 속에서  야만인의 고독을 나타내고 있다)


 

 

자살을 시도한 폴 고갱

 

고갱은 세잔, 고호와 함께 이른바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삼대 거장 중의 한 사람이다.
1903년 그의 말년은 참으로 참담했다
가난과 병으로 찌들다 고통스러운 자신의 생을 마침하고
그의 인생의 많은 작품을 인류에 선사하고  마르케자 섬에서 1903년 그의 생을 마감했다
인간 환경을 그린 최초의 근대 화가였으며 자전적인 수필집"노아 노아"도 남기고 있다.


폴 고갱은 한 때 파나마 운하의 건설공사장에서 하루 13세시간 동안  모기가 들끓던 늪지에서 노동 일을 했으며  그 후 선원이 되어서 세계의 바다를 항해하기도 하였다
증권 브로커로 생계를 꾸려나가다가 35세 때에 화가가 될 결심을 하였다


또한 가족을 버리고 남은 생애 동안 이곳 저곳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브리타니와 파나마 그 후 남동 프랑스 마을 아를즈에 이르러 그 곳에서는 빈센트 반 고호와 함께 공동생활을 하였으며  심한 의견 대립을 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도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보냈다
소위 자연적인 삶을 찾기 위하여 고갱은 남태평양을  두 번이나 갔다
그리고 플리네시아 인들과 많은 섬들이 그의 화폭에 담겨졌는데
현재까지 고갱의 뛰어난 작품들은 거의 이것들을 주체로 한 그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이것에 심한 타격을 받고 1897년의 마지막 날 정글 속으로 들어가
비소 원소를 다량 복용함으로서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했다
곧 먹은 비소 분말 가루를 다 토해 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다음날은 아픈 몸을 이끌고 정글 속을 빠져 나왔다


그 후 고갱은 남태평양에 머물렀는데 그의 보헤미안적 기질과 원주민을 편든다는
이유로 종교 관계자들과 심한 마찰을 벌린다


영국작가 서머세트 모음의 걸작 '달과 육펜스'에 나오는 주인공 스트릭랜드.
화가 고갱의 일생을 다룬 이 작품에서 작가는 달과 동전 펜스를 비교하며
달은  예술의 극치를 말하고 펜스는 세속적인 부와 명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낸 것 같다
책 내용 전부가 고갱의 삶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림을 그리다가 죽었는데 매독과 영양 실조 때문에 죽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1892 년 타이티에서 그린 유화 "기타 치는 사람"은
1980년 런던에서 38만 프랑크에 경매되었다


진품의 가치는 항상 한 세대가 지나야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훌륭한 분들이 겪었던 당시의 고통을 되뇌어 보았다
끝없는 진리의 탐구도 훗날에 빛을 발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출처 : 언덕에 올라
글쓴이 : 아카시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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