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사회/역사의 향기

[스크랩] 콜럼버스

잔잔한 시냇가 2006. 9. 20. 09:32

 

 

콜럼버스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태어난 콜럼버스는 항해 지도를 연구하다가 지구는 둥글고 서쪽으로 항해하면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1477년에 리스본에 나타날 때까지의 행적은 명백하지 않지만 상당한 학식을 지녔으며
일찍부터 항해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그는 포로투갈 왕에게 탐험을 간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에스파냐로 가 이사벨라 여왕의 후원을 받게 된다
당시 에스파냐는 카스티야와 아라곤으로 구분되어 있어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가 카스티야를 공동 통치하고
페르난도가 아라곤을 단독 통치하는 상태였다
이사벨과 페르난도 부부는 해외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여왕은 콜럼버스를 등용하였다.


그는 그곳에 여왕의 이름을 딴 이사벨라 시를 건설하는 한편
원주민들을 동원하여 금을 채굴하였지만 금의 산출량이 적자 항해 자들은 인디언을 살육하고 노예화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황금 대신 본국으로 노예를 보내었으며 콜럼버스는 3차 4차 항해에서도 인도의 항로를 발견하지 못하여 문책을 당하였다.
여왕이 죽은 후 그는 공금 횡령으로 잡혔으며 말년을 숨어서 지내게 되었다 한다


오늘날 서인도 제도는 여기에서 유래한다.
그가 발견한 서인도 항로를 계기로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인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그 토착민들의 이름도 인디언이라 하여 그들의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신 항로를 개척하러 갔지만 지금의 쿠바 쪽을 죽을 때까지 인도라고 생각했었다.


"AFP통신은 1506년 5월20일 발라 돌리드에서 55세로 사망한 콜럼버스의 타계 500주년 기념 행사가 스페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아메리카 토착 문명을 파괴한 그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신대륙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식민지에서 폭정을 펼쳤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스페인에서 공개됐다고 AFP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스페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자료에는 1492년 콜럼버스가 현재의 도미니카공화국
일대를 정복한 뒤 얼마나 잔인한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는 23건의 증언이 담겨 있다.


증언에는 그가 자신에게 낮은 계층 출신이라고 말한 한 여성의 혀를 자르고 발가벗긴 채 당나귀에 태워 길거리에 끌려 다니게 했으며 재판 없이 벌을 내렸으며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물자를 공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토착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세례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바스코 다 가마는 최초로 인도로 가는 길을 찾은 사람이다.
다 가마가 희망 봉으로 가서 아프리카로 갔는데 거기에서 인도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는
아라비아 상인을 찾아 인도로 가는 길을 알게 되었답니다


잔혹한 역사 이야기들은 땅 따먹기에서 시작되어 인간의 생명을 상품화하고
악한 행동을 양심의 거리낌 없이 했다
생명의 존엄성은 모든 인종들에게 내려준 귀하고 값진 것인데 ..
그들은 평화롭던 마을들을 질병과 문명으로 병들게 했으며 끝에는 그들의 생명도
노략 당했다는 사실들이 나타난 셈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고달픈 삶을 다시 되새겨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출처 : 언덕에 올라
글쓴이 : 아카시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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