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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낙심 죄

잔잔한 시냇가 2009. 12. 23. 04:12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인간에게는 살고 싶은 본능이 있는 한편 죽고 싶은 본능도 있다고 합니다. 살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가 하면, 동시에 죽으려 하는 의지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본래의 모습입니다.

영국과 남 아프리카의 네덜란드 이주민들 사이에 벌어진 보어 전쟁(Boar War, 1899~1902년)이 한창일 때, 남 아프리카의 한 병사가 매우 드문 죄명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그의 죄명은 바로 ‘낙심 죄’ 였습니다.

남 아프리카의 ‘레이디스미스’라는 작은 마을이 영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 그는 마을을 방어 중인 병사들의 대열을 돌아다니며 온갖 부정적인 정보와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는 적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 적들의 공격을 막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영국군이 얼마나 많은 나라를 점령하고 전과를 올렸는지에 대해 말하면서 그 마을이 함락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떠들어 대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총 하나 사용하지 않고 그 마을을 공격했습니다. 그의 말은 총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가진 무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낙심시키는 것보다 더 좋은 무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부정적인 말과 낙심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 무기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말과 희망은 사람을 살리는 무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우리에게 길은 있습니다.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의 눈길로 지켜 보시며 당신에 대해 생각하고 계십니다. 당신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만 집중하지 말고, 당신을 기다리시는 사랑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을 자주 생각하십시오. 그분과 대화하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 분께 감사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주님과의 연합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과의 연합은 당신을 격려해 주고 강건하게 하며 모든 부족함을 채워 줄 것입니다.

성공은 실패의 꼬리를 물고 옵니다. 지금 포기한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시작해보십시오. 안 되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 실패입니다. 포기한 순간이 성공하기 5분 전이기 쉽습니다. 실패에서 더 많이 배웁니다. 실패를 반복해서 경험하면 실망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포기"를 생각해선 안 됩니다.

실패는 언제나 중간 역이지 종착역은 아닙니다. 길이 막히거든 다른 길로 가라 내 것이 아니다 싶은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것을 찾아 다시 도전하는 것, 삶은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삶은 언제나 희망을 말합니다 역사를 움직인 사람들은 대부분 생전보다 죽은 이후에 더 고귀한 가치를 인정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오는 고독,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고독이야 말로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잃고, 가정을 잃고, 친구를 잃고, 명성을 잃고... 다 잃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인정이 있으면 외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마저 얼굴을 가리우고 나를 떠나신 것 같을 때, 무서운 낙심이 찾아 옵니다. 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실까? 살아계시다고 해도 나 같은 것을 사랑하실까? 이것이 영적인 고독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Cast Away - ‘내던져진' 이라는 뜻의 오래 전 영화가 있습니다. 항공기 추락사건으로 한 사나이가 무인도에 떨어집니다. 그곳에서 4년을 지내면서 미치도록 외로워합니다. 목숨을 연명해 나가는 일보다 고독과 외로움이 지독히 그를 괴롭힙니다. 그를 절망스럽게 만듭니다. 외롭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항공기에 싣고 가던 화물 중, 파도에 떠밀려온 배구공에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그려 넣고, 그것을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배구공을 향하여 말을 걸고 자기의 가슴을 털어놓고, 상의를 하고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배구공을 제작한 회사 이름을 따서 그 가상 인물을 ‘윌슨'이라고 부르면서 그와 친구가 되어 지내던 어느 날, 주인공은 결단을 하고 뗏목에 윌슨을 태우고 육지를 찾아 나서는 대 모험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항해 도중, 그가 지쳐 잠든 사이, 윌슨이 그만 파도에 쓸려 떠내려갑니다. 윌슨을 건지려고 갖은 애를 쓰다 결국 실패하고 그는 뗏목에 누워 그렇게도 슬피 통곡을 합니다. "윌슨. 미안해, 미안해!”를 연발하면서. 한 핏줄을 잃은 것처럼, 가족을 잃은 것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살 때, 사람들은 이웃의 고마움을 모릅니다. 서로를 '잉여 인간'- 남아 도는 인간으로 여기고 짐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외톨이가 되어보아야 이웃의 소중함을, 함께 부딪기며 사는 고마움을 아는가 봅니다. 우리가 영적인 충만에 젖어 살다 보면 자칫 그 행복을 모르고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내던져져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느끼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 고독이 무엇입니까?

왜 당신은 저를 피하시고 원수 취급하십니까?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같은 저를 왜 괴롭히십니까? 마른 풀과 같은 저를 왜 쫓아오시나요? 당신은 저의 죄를 모두 기록하시고, 어렸을 때의 잘못을 갚으십니다. <욥기 13장 24~26절>


 

 

출처 : 공유의 공간
글쓴이 : 하얀미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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