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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당신은 누구십니까?

잔잔한 시냇가 2011. 7. 2. 17:47

 

 

우편물 중에서 기다려지는 게 하나 있다.

그건 2 주일에 한 번 꼴인 '민들레교회이야기'

며칠 전에 받았는데 혼자 보기 아까워

여기에 옮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도종환

 

 

 

 

 

 

         강으로 오라 하셔서 강으로 나갔습니다

         처음엔 수천 개 햇살을 불러내어 찬란하게 하시더니

         산그늘로 모조리 거두시고 바람이 가리키는

         아무도 없는 강 끝으로 따라오라 하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숲으로 오라 하셔서 숲 속으로 당신을 만나러 갔습니다

         만나자 하시던 자리엔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를 대신 보내곤

         몇 날 몇 밤을 붉은 나뭇잎과 함께 새우게 하시는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고개를 넘으라 하셔서 고개를 넘었습니다

         고갯마루에 한 무리 기러기떼를 먼저 보내시곤

         그 중 한 마리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시며

         하늘 저편으로 보내시는 뜻은 무엇입니까

 

         저를 오솔길에서 세상 속으로 불러내시곤

         세상의 거리 가득 물밀듯 밀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났단 사라지고 떠오르다간 잠겨가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상처와 고통을 더 먼저 주셨습니다 당신은

         상처를 씻을 한 접시의 소금과 빈 갯벌 앞에 놓고

         당신은 어둠 속에서 이 세상의 의미없이 오는 고통은 없다고

         그렇게 써 놓고 말이 없으셨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지금 풀벌레 울음으로도 흔들리는 여린 촛불입니다

         당신이 붙이신 불이라 온몸을 태우고 있으나

         제 작은 영혼의 일만 팔천 갑절 더 많은 어둠을 함께 보내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 창작과 비평사 1993)

 

 

 

 

 

 

 

 

 

 

 

이어서 최완택 목사는 이렇게 썼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강 숲 고개로 표현되는 자연인가.

그 자연을 이루신 하느님인가,

아니면 상처와 고통을 준 이 땅의 역사인가.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이 누구인지를 자꾸 묻는 시인은

마침내 당신이라는 존재 앞에

서 있는 자기를 보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지금 풀벌레 울음으로도 흔들리는 여린 촛불입니다.

도종환의 시 "당신은 누구십니까"를 음미하는 가운데

만해 한 용운의 <알 수 없어요>가 다가왔다.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치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님의 침묵   1926)

출처 : 그대 그리고 나
글쓴이 : 보견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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