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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을 먹는 것

잔잔한 시냇가 2009. 3. 28. 06:04

하나님이 어떻게 신성을 분배하는가?

금을 그냥 분배할 수 없다. 떡을 통해서 분배한다.

하나님을 먹을 수가 없다. 하나님을 우리를 어떻게 먹겠는가.

어떤 사람은 호흡해 들인다고 한다. 하나님을 어떻게 호흡해 들이겠는가.

공기 같으면 호흡해 들이겠지만 하나님을 우리가 호흡해 들이겠는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속에 모신다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을 어떻게 내가 모시는가. 모실 수가 없다.

사람 같으면 억지로 붙잡아다 모실 수 있지만 하나님이기 때문에 모실 수가 없다.


하나님을 우리 안에 우리 성분으로 분배받으려면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하나님을 먹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를 먹는 것이다.

그 떡 상, 금으로 된 상을 먹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위에 놓여진 떡을 먹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먹는 것이라는 말이다.


떡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떡이라는 형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분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이 그분에게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를 먹음으로 그분에게 참여한다.

왜 내가 예수의 운명이야기를 자꾸 하는가?

그분을 우리 속에 가질 방법이 없다. 그분과 함께 걸어갈 방법이 없다.

믿음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건 다 해봐야 각각이다.

아무리 내가 예수님을 잘 믿고 의존해 봐야 그는 그이고, 나는 나이다.


우리가 한 떡이 될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에 죽은 그의 운명 안에서 밖에 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예수를 내가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아무리 모시려고 해도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나는 나이고 그분은 그분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떨어질지 모른다.

내 생각함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갈라질지 모른다.

내가 그분과 하나되는 유일한 길은 그분이 운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일부러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죽으심 안에 발견되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둘이 아니다. 그 전에는 항상 둘이였지만

그 안에서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이분을 알고 난 후에

분은 자기 자신을 분배하려고 십자가에 죽으셨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를 떡으로 주어보고 여러 가지 해 봤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을 나눠주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을 받아먹는 것이냐?

주고 받아먹고 해야 하는데 이것은 내 살이라,

받아먹으라 했으니까 받아먹어야 하는데 의식적으로는 되지만

실제적으로는 내가 어떻게 그분의 살을 먹느냐는 이것이다.


그분의 운명을 먹는 것이 그분의 살을 먹는 것이다.

이 이외의 다른 길은 절대로 없다.

나는 누가 어떤 사람이 정말 믿음이 좋아서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하더라도, 옛날에는 그걸 보면 놀랍게 생각했다.

어떻게 저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건 그것이고 예수님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갖는 것과

그분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이것이 완전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건 일을 하는 데는 필요하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면 그건 어떤 일을 하는 데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분과 내가 하나 되는 데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래서 나도 아무 능력이 없지만 이렇게 안심하고 있다.

산을 옮기는 것은 고사하고 돌멩이 하나도 옮기지 못한다.

옛날에는 불안했다. 무엇인가 증거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이 내게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데도 그런 증거가 안 나왔다. 그것을 얻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안 되었다.

항상 불안했다. 지금은 전혀 불안하지 않다. 왜 불안하지 않는가?

그분의 운명 안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다.

 

잠을 잘 때도 일어날 때도 걸어갈 때도 무슨 일을 할 때도

나는 그분의 운명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벗어나고 싶다 해서 벗어나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들어가고 싶다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안에서 발견된 나는 그분과 함께 있을 뿐이지

내 마음대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안심이 되었다.

그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어떻게 하나가 되겠는가?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
예수님이 만약에 하나님과 하나라면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 된 것이 곧 하나님과 하나 된 것이다.

내가 하나님과 하나 된 것은 모른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라면 내가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이

곧 내가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금이신 하나님을 먹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방법으로 자기를 분배하고 있다.

이 원칙은 영원히 동일하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직접 먹으려고 생각한다거나

하나님을 직접 상대한다고 생각한다는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상대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먹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이다.

출처 :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살아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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