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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냐?’

잔잔한 시냇가 2009. 3. 28. 06:06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첫 번째 누리는 것이 진설병의 상이다.

12덩이의 떡,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12덩이의 떡을 올려놓는 상이 있는데

이 상을 조각목으로 짜서 금으로 입혔다.


성막을 건축하는 순서에 따르면 돌 판을 궤 안에 넣고,

궤를 시은소 덮개로 덮고, 휘장을 쳐서 지성소를 만들고,

그 다음에 떡 상을 놓고, 등대를 놓고, 항로를 놓고 이런 순서로 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배하시는 순서이다.

우리가 들어가는 순서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배하는 순서가 다른데

여러 군데서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는 순서가 조금씩 다른 데가 있다.


여기는 떡이 있는 곳이다.

떡 하면 생각나는 것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말씀하기를

내가 생명의 떡이다 하고 말씀했던 것이 떠오르게 된다.

떡 하면 생명의 떡, 이것은 하늘에 속한 양식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떡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로부터 오는 양식을 먹어야 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양식 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동산에서도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느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느냐 하는 두 가지 먹는 문제로 표현하였다.

먹는 것은 내 속에 들어와서 소화가 되어서 내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이라면 생명나무가 하나님이라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내 속에 하나님 성분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우리 속에 선악을 알게 하는 성분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첫째 조건은 하늘로부터 오는 양식을 먹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

그래야만 하늘의 성분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 살 때 애굽의 양식을 먹었다.

세상의 성분이 들어왔다. 바로가 준 양식을 먹었다. 그래서 바로의 성분이 들어왔다.
이 사람들은 광야에 나와서 하늘로부터 오는 만나를 먹어야 했다.

그 만나는 애굽에서 먹던 양식을 대치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처음에 양식이 떨어지자 당황했다.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들이 바닥이 나자 이를 어떻게 하는가하고 난리가 났다.

하나님의 계획은 애굽에서 가져 온 양식이 다 바닥 난 후에

하늘로부터 온 양식을 주려고 한 것이다.


그들이 성막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늘로부터 온 양식을 먹어야 성막을 건축할 수 있지

애굽에서 먹은 양식이나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을 먹고는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준 양식을 먹고 그것을 먹고는 하나님의 집을 건축 할 수 없다.


우리가 교회에 들어왔을 때 문제는

그 동안 세상에서 먹었던 양식을 먹고 교회에 들어왔다.

교회를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성분은 세상의 성분이 그냥 들어있다.

그래서 다 세상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 믿는데도 불구하고 보이기가 세상처럼 보이고,

자기 안에도 세상 성분 밖에 없기 때문에 세상 방식으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이다.

성분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먹는 것이 다르니까

개고기 성분이 다르고 소고기 성분이 다르다.

 
애굽의 양식을 먹은 사람하고,

하늘로부터 온 양식을 먹은 사람은 성분이 다르니까

교회 생활이 이상하게 된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처음에 와서 그런 문제에 봉착한다. 교회는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왔고

다른 곳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와 보니까

세상과 다를 것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 사람도 있다.

그것은 세상의 양식을 먹고 세상의 기준으로

다시 교회를 보니까 세상에서 생각했던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세상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생각했던 교회는 이럴 것이라는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늘로부터 온 양식은 우리가 이럴 것이다 하는 그런 양식이 아니다.

만나가 처음 내려왔을 때 그걸 만나라고 한 이유가

하늘에서 갑자기 눈처럼 이슬처럼 양식이 내려 왔는데

도대체 한 번도 보지 못 한 것이었다. 본 일도 없고 먹어본 일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냐?’로 되었다.

만나라는 말은 ‘이것이 무엇이냐?’라는 말이다.
절에 가니까 어느 스님의 화두인 것 같은데 ‘이 머꼬?’이다.

우주나 모든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가 아니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먹어보니

달콤하고 양식이 되는데 한 번도 본 일도 없고

먹어본 일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머꼬?’라고 말한 것이다.

스님이 말한 ‘이 머꼬?’하고, ‘이 머꼬?’는 아주 다른 것이다.

만나라는 말은 ‘이 머꼬?’라는 말이다. ‘이것이 무엇이냐?’라는 말이다.

경상도 말로 하면 ‘이 머꼬?’라는 말이다.


이 양식은 하늘에 속한 음식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베스다 광야에서 많은 무리에게 떡을 나눠주고 나니까

백성들이 하는 말이 모세는 광야에서 우리에게 40년 동안 만나를 주었는데

너는 우리에게 뭘 줄 것이냐고 말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이지만 먹고도 죽은 양식이나

내가 주는 양식을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영생하리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라게 됐다.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내려오게 했던 만나가

너무너무 놀라운 것인데 그것을 먹고도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하늘로부터 오긴 왔는데 먹고도 죽은 양식이었다.

그러나 내가 주는 양식을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하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이다.

진설병 위에 놓여진 상은 하늘에 속한 음식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의 떡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동산에 놓여졌을 때 생명나무의 열매를 임의로 먹도록 허락되었다.

네가 이것을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였다.

‘임의로 먹되’는 네 마음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먹으라는 뜻이다.
원래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늘에 속한 양식을 두고 이것을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이 그것을 먹지 아니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다.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 떡을 우리에게도 달라고 하니까

나의 줄 떡은 내 살이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따라 왔던 사람들이 모두 가버렸다.

하늘로 온 양식을 준다니까 별건 줄 알았더니

내가 줄 떡은 내 살이라고 하니까

자기 살이 무슨 양식이 되겠느냐며 수군수근하면서 가 버렸다.


마태복음 26장에 마지막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드실 때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떡을 주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상징적인 것이다. 그리고 고린도 전서 11장 24절에서는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했다.

기념하라는 말을 사람들은 묵상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옛날에 성찬식을 할 때는 이 말에 따라서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예수님 죽으신 것을 생각하고 다시 오실 때 까지를 생각하면서 엄숙하게 그것을 먹었다.


기념하는 것은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새기는 것이다.

각인 한다는 뜻이다. 왜 각인하는 것인가? 먹으면 새겨진다는 뜻이다.

먹으면 성분이 내게 들어온다. 쥐약 먹고 왜 죽는가?

쥐약 먹으면 성분이 내게 들어오니까 죽는다. 복어 알을 먹고 왜 죽는가?

복어 알의 독이 사람 속에 들어와 버리니까 죽는 것이다.

이미 몸에 들어와서 퍼져버리면 다르게 방법이 없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한 양식을 먹으면,

우리 속에 들어와서 퍼져 버리기 때문에 다시 나갈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이 기념한다는 뜻이다. 묵상한다는 뜻이 아니고

광복절 기념하듯이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먹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먹음으로써 새겨진다. 흡수하면 동화된다는 뜻이다.

출처 :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살아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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