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를 통해 본 별서 정원의 풍류
정자는 이상적 풍경을 상기시켜 뜻을 붙이는 것 외에 선비들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덕목에 시선을 집중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연꽃을 바라보는 애련정(愛蓮亭), 물 이랑을 지켜보는 관란정(觀瀾亭), 바람을 쐬는 활래정(活來亭) 등은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덕목을 살피기 위함이다. 이 밖에 유명한 일화를 상기시키기 위해 편액을 붙인 경우도 있다. 가뭄에 비를 기다리다 오랜만에 내린 비를 기념하여 희우정(喜雨亭)이라 칭한 예가 이에 속한다. 그 밖에 정자의 모양을 따서 연꽃잎 모양이란 뜻의 부용정(芙蓉亭), 맑은 광채가 어려 있다는 하환정(何煥亭)등으로 편액을 붙이기도 한다.
이렇게 정자에 편액을 붙여 정원에 시적인 운을 더하는 것은 정원의 백미다. 그러나 이런 편액들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동양건축의 특징이고, 그보다 한국 정자의 독창성은 오히려 주련시(柱聯時)와 정자 안쪽에 숨겨 놓은 제영시(題詠時)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주련시는 기둥에 연이어 붙여 둔 시이고, 제영시는 시회(詩會)가 있을 때 여러 시제에 맞게 시를 지어 서까래 밑에 붙여 놓은 시다. 이런 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매 계절마다 시회를 열었던 선비들의 화목풍류와 산수풍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부터 우리 나라에는 꽃이 피는 계절마다 문사들이 모여 시를 짓는 모임들이 있었다. 정원에 매화나 석류 등을 심고 대나무로 난간을 쳐서 「죽란화목기」를 남긴 다산 정약용의 죽란시사(竹欄詩社)는 시회로서 이름이 높았던 모임이다. 다산의 시회는 살구꽃이 처음 필 때, 복숭아꽃이 필 때, 한여름 참외가 익을 때, 초가을 연못에 연꽃이 필 때, 국화꽃이 필 때, 겨울철 첫눈이 내릴 때, 화분에 매화가 필 때 각각 한 번씩 모였다고 한다.
이 모임에 참가한 시사들은 대부분 초계문신(抄啓文臣)들로서, 초계문신은 정조가 선비들 중 특별히 우수한 인재들을 대우하여 붙인 칭호였다. 즉 유명한 시회에 참여하여 계절을 읊는 것은 선비들 사이에 크게 영광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선비의 정원들은 그만큼의 격조가 있어야 했고, 화목풍류와 관련된 고사에 관해 식견을 갖추는 것은 선비들에게 필수적인 교양이었다.
정약용이 유비지에서 괴석(怪石)과 화목을 벗삼아 지내며 지은 「다산화사」, 조선 초 시서화(詩書畵) 삼절로 유명했던 강희안이 『진산세고』에 남긴 「양화소록」 등은 이런 화목풍류의 면모를 대표적으로 잘 보여준다.
다산 문집에 「산루석좌(山樓夕座)」란 시가 있는데, 정자에 홀로 앉아 화목을 읊는 고사(高士)의 절개를 느낄 수 있다.
저녁 누각엔 피리 소리 그치고 갈가마귀 날아들어
외로이 마당에 서서 이슬꽃 바라보네
바람 스치는 대숲에 달빛이 부서지고
넘어진 국화꽃이 비 온 뒤에 다시 피네.
여기서 국화꽃을 노래함은 ‘양화소록’에서 임곡 최윤덕의 화목풍류에 관련된 일화와 통한다.
최 영상은 공이 컷지만 공신임을 자랑하지 않고 소박함과 청렴함을 사랑하여 네모난 연못 주위로 국화꽃을 비롯하여 여러 꽃을 심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했다고 한다. 정 다산이 국화꽃을 노래한 것은 이런 일화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처럼 옛 의인들의 인품과 절개를 서로 칭송하고 또한 자신의 일기(逸氣)를 겨루던 모임이 곧 화목풍류를 즐기던 시회였고, 따라서 시회에 참가하여 시를 남기는 것은 선비로서의 자질과 덕성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이런 정서의 총화가 곧 정원의 길목을 누르고 있는 정자나 누각들이며, 그속에 총총히 맺힌 시문(詩文)들이다. 한국에서 정자가 나타난 것은 기록상으로 볼 때 백제의 망해정이 시초이지만 화목들과 함께 어울리며 정원에서 정자의 기능을 한 것은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이 시대에는 청자로 정자의 지붕을 올리는 등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었던 듯하다.
이규보는 「사륜정기」에서 정자는 높고 사방이 탁 틘 텅 빈 건물이나 단지 정자만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거문고 타는 사람, 노래 부르는 사람, 시에 능한 사람, 바둑을 두는 사람, 주인 등의 주객이 같이 어울려야 정자의 취향이 살아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처럼 정자는 정원에서 풍류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정자들은 흔히 누각이나 당(堂)과 겸하는 경우가 많다. 누각이나 정자나 당은 모두 높이 짓는 건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설문해자』에 따르면, 당은 본래 기단 위에 세우고 남향(南向)하며 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에 붙이는 명칭이며, 누는 본래 당을 2층 이상 올려 짓는 것으로 정원의 한적한 곳에 위치하는 건물의 명칭이다. 또한 후한서 「백관서」를 보면 정자는 나그네가 쉬어 가도록 일정한 거리마다 만들어 놓은 임시 거처의 의미로 쓰였고, 『설문해자』에서는 정자(亭子)가 높을 고(高)자와 정 정(丁)자를 합하여 만든 것으로 높은 곳에 만들어진 건물이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중국의 이런 건축 의례들을 모방하지 않고 누각의 형태로 지은 누정(樓亭)이나 정자의 기능을 하는 당(堂)이 많다. 이런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자든 누각이든 당이든, 얼마만큼의 시(時)가 있고 시상(詩想)이 서려 있느냐가 사실 더 중요하다. 푸른 물 고이듯 기둥마다 기와마다 시문이 고여 있고, 그 기상이 소나무에 앉은 두루미가 날개를 펴 구름을 젓는 듯하면 작은 정자라도 높고 우람한 당이나 누각을 이기는 것이 조선의 건축미다.
따라서 시를 알지 못하고는 조선 건축의 멋을 알 수 없고, 시가 없이는 조선 건축의 색은 빛을 잃는 법이다. 정자는 그 중에도 가장 시를 많이 품은 건물이며, 정자에서 시를 읽어 냄으로써 비로소 정원은 그 뜻을 얻게 된다. 풍경에 감춰진 시적 경치, 즉 시경(時景)을 찾아 내는 것이 한국 정원의 멋이요, 정자 건축의 참맛인 것이다.
화목풍류와 더불어 조선의 정자들이 노래하던 산수풍류의 시경은 한 마디로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 할 수 있다. ‘광풍제월’을 단어 그대로 풀면 빛과 바람,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과 달을 의미한다. 이는 어원적으로 중국 송나라 시인 황정견이 송 유학의 집성자인 주희의 인품을 높이 칭송하여 표현한 어구지만, 한국 정원에서는 원래의 뜻에 더불어 정원 건축의 시적 아름다움을 잘 보여 주는 어구이기도 하다.
빛, 바람, 맑은 하늘, 달의 시(時)를 정원에 담음으로써 그 정원을 거니는 사람에게 자연의 본질을 그대로 느끼게 해 주고 자연 쏙에서 배우게 하여 인품을 절로 갖추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소박함은 깨끗함과 다르지 않으니 세속적인 마음을 비우고 깨끗한 마음을 만드는 것이 곧 광풍제월의 궁극적인 뜻이 된다. 공백이 그윽한 화선지에 매화 한가지를 치듯 한국 정원은 그런 일심(一心)으로 만들어졌다.
한편 성산삼경(星山三景)으로 꼽히던 환벽당, 식영정, 소쇄원 등을 돌아다니며 정자마다 시를 남긴 송강 정철은 산수풍류를 담아 유명한 「성산별곡」을 지었는데, 그의 글은 산천에 숨은 신선을 그린 고사도(高士圖)의 신선이 엮어 놓은 듯하다. 정원에서의 산수풍류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그의 정갈한 문체는 별곡(別曲)이란 새로운 문학 형태를 창조해 내기에 이르렀다.
별곡이란 곧 산음(山陰)에 숨은 선비들의 별장인 ‘별서(別墅)’의 정자들을 유람하며 지은 노래란 뜻으로, 흔히 구곡팔경(九谷八景)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별서의 한두 정자들에서 나온 신선의 문학이다. 신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별서 정자에 고즈넉이 앉아 거문고에 줄을 얹어 소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을 노래하는 경지임을 그의 별곡에서 읽을 수 있다.
거문고 줄을 얹어 풍입송(風入松)을 타자꾸나
손님인지 주인인지 모두 잊어버렸도다
장공(長空)에 떠 있는 학이 이 골의 진선(眞仙)이라...
이 밖에 박연·박팽년 등 조선의 유명한 예인과 문사들이 제영시를 남긴 쌍청당은 조선 초의 학자 송유가 머물던 곳인데, 안평대군이 제영을 다시 차운하여 시를 짓기도 했다. 그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쌍청당이 남쪽 하늘 어딘가 있다더니 몇 리 길인가
와룡 선생이나 서봉 선생처럼 이름이 나 있지도 않네
뜰이 깊고 나무가 무성하여 비바람이 일렁이고
긴 길 끝에 문이 내려앉아 손님을 맞고 보내는구나
세상을 피해 누정에 오르니 누런 학이 멀리 날고
몸을 기울여 물가에 누우니 백구(白鷗)가 가벼이 나는구나
오가는 세월 속에 희황제의 뜻을 남기는 듯하니
양보산 시를 읊으며 기인과 은사가 되려 함이네.
쌍청당은 조선시대의 유명한 여섯 정자 가운데 하나로서, 환벽당·백화단·상추정·절우당·쌍청당·정우당 등여섯 정자를 읊은 송남수의 「유거육영(幽居六詠)」이란 시가 남아 있다. 이 중 단(壇)은 정자가 없어지고 남은 자리이며, 당(堂)은 정자의 기능을 하던 조촐한 건물을 의미한다. 한국에서의 정자나 당은 사실 건물의 실용적 기능이나 형태보다는 주변에 어떤 자연 경치를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정자는 보통 구곡(九谷)이나 십경(十景) 등을 끼고 있으며, 곡과 경을 따라가며 몇 개의 정자를 연속하여 만나는 식으로 전개된다. 유명한 고산구곡·화양구곡·곡운구곡·무이구곡 등은 빼어난 경치를 조망하는 정자들을 굽이굽이에 품고 있었다. 쌍청당도 마찬가지로 회천십경에 포함되며, 쌍청당이 없어지고 나서도 여전히 사라진 정자를 경치와 함께 노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곧 시는 남고 정자는 없어진 예로, 이런 경우를 통해 정자의 본질은 시이며 시 속에 담긴 경치임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쌍청제경(雙淸霽景)의 시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날이 지고 저녁이 되어 비는 개고 맑은데
흰 달이 층층이 높은 하늘에 떠가네
주인이 불 밝힌 방을 나서니
곧 깊은 비애가 가슴속에 비치는구나.
정자에 어린 애상을 노래하는 것은 정자 주위의 경치를 단순히 즐기기만 했던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산중(山中)에 떨어진 정자에 만들어진 정원이 곧 별서인데, 이는 곧 속세와 떨어져 산 속에 묻히고자 한 선비들의 염세적 사상을 대변한다. 따라서 별서 정원의 정자는 속세에 대한 한과 은일(隱逸)의 태도를 숨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은일은 중국의 한(漢)이 망한 뒤 문사들이 산 속으로 숨어들어 무위(無爲)로써 날을 보내며 원림(園林) 가꾸기로 소일하던 것을 의미하는데, 죽림칠현이 대표적이다.
조선에서는 정계에 진출할 의사를 일찌감치 꺾은 선비들이나 정계에서 은퇴했거나 유배당한 선비들이 중국의 은사(隱士)들을 본받아 숲 속에 정자를 세우고 작은 정원을 가꾸며 살게 되었는데, 이것이 곧 별서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경치는 한결같이 애상에 젖게 마련이며, 허무사상이 농후한 사고방식에 따라 표현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자연을 찬미하며 새로운 방식의 삶을 얻어 오히려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일찍 정계에서 발을 돌려 산 속으로 들어간 경우에 이런 낙관(樂觀)이 엿보인다. 경정(敬亭)이란 이름의 아름다운 정자를 가진 영양의 서석지가 이에 해당한다. 서석지에는 「경정잡영」과 「임천잡제」 등이 전하는데, 연못을 내려다보는 장방형 정자인 경정의 서까래에 아담한 시경을 노래하여 열을 지어 붙여 놓았다. 그 시상들은 희희낙락(喜喜樂樂)하며 여유로 충만해 있다. 경정의 서까래에 붙인 판각본에 담긴 시경은 연지에 올라온 석맥(石脈)을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며 노래하고 있다. 그 중 ‘상서로운 구름의 돌’을 보면 다음과 같다.
상운석은 와룡암 앞뒤로 있으니
점점이 고르게 퍼져 있는 모양이 모두 바르네
달빛마냥 하얗게 펼쳐진 서리 비단
둥글둥글 늘어선 패옥 갓끈
사방 어디에나 감미로운 빗방울을 품었네.
초야에 묻혀 살며 작은 연못을 경영하는 것으로 정치적 야망을 보상하고자 했음에도, 그 안에는 큰 기상과 궁궐이 부럽지 않을 아름다운 시들로 가득 차 있다. 진정으로 소박한 것이 화려한 것보다 더 훌륭한 것이요, 자연이 인간 세상보다 더 부귀함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정자와 누각을 말함에 있어 소쇄원과 창덕궁 후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미 이름 없는 작은 정자 하나에도 똑같은 시정(詩情)과 광풍제월의 일광(一光)이 배어 있음을 별서 정자들을 유람하며 절감할 수 있다. 비움이 곧 채움이란 깨달음을 말해 주는 이 산음의 정자들은 산길 냇가에 떨어진 영롱한 갓끈과도 같다. 그 순수한 시정과 기상에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을 알지 못한다. 어느 새 한 가지에 매화가 가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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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정 욱
Land Plus Art 연구소 운영.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술과 조경 미학의 접점을 찾는 글과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글 출처 : 문화와 나 /2002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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